예수님께서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며 심판에 대해서 가르치시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리 중 몇 사람이 예수께 가까이 다가와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마치 제사 제물처럼 죽인 사건을 격앙되이 전했습니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론 ‘당신이 언급한 심판의 순간이 바로 이때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이 일로 동포들을 위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예수님께 사회적, 인종적, 국가적, 정치적, 군사적 입장 표명을 기대하며 논평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공식적인 답변으로써 모여있는 무리를 공분하도록 선동하여 봉기하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한 명이 아니라 두어 명 이상이었음을 밝히며
그들이 예수님의 반응을 기다리는 공식적인 증인으로서 예수께 나아온 것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적이고 민중적인 선동의 목적에 휘둘리지 않으시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주제로 대화를 끌어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반 군중들의 상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어떤 순간에서든지 지켜주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하시지 않는 분이시기에 범죄한 사람들을 용서치 않으시고
인생에서 그 값을 지불하게 하신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장 오래된 구약 성경인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이 욥을 비난했던 바로 그 논리에서
2천 년이 흐르도록 단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한 이해였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하기를 사건과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은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고 채찍에 맞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처형당한 갈릴리 사람들의 사건을 죄 없는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으로 생각하기보다,
‘사형당한 갈릴리인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음을 볼 때,
그들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어떤 큰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인 처형 사건’ 외에 ‘실로암 망대 붕괴 사고’와 같은 일에도,
사람들은 역시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사고로 생명을 잃게 된 열여덞 명의 희생자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들이 무언가 잘못한 바가 있기 때문에 징벌을 받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건과 사고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죄악 때문에 심판받은 것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은,
사실 그들이 하나님의 온전히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아무 잘못도 없는 의로운 사람을 벌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인생에서 사건과 사고와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곧 그가 선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발견되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의미하는바 결론이 그들에겐 더욱 중요했는데,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그런 험악한 일이 생기지 않았음을 볼 때
자신들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증명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건과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정죄할 때마다 반대로 자신들의 무죄함을 확인하게 되는 안도감을 얻게 되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이들의 불행에서 자신들의 평안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사건으로 처형된 사람들, 사고로 죽은 사람들,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 인생에 들이닥친 불행과 죽음과 고난의 사건사고는,
정결하고 의로운 다른 이들에 비해 그들이 유독 사악하고 타락한 범죄자들이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다고 해서 죽임당한 이들이 결코 무고한 희생자들이었다고 말씀하심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 “너희도 이런 심판을 당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즉 죄의 문제에 해결함을 보지 않는다면 너희도 이런 심판을 곧 겪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에게 일어난 비참한 사건과 사고들은 역시 그들의 죄악 때문에 맞이하게 된 심판이 맞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아니라고 하신 것은 저들과 달리 나는 괜찮다고, 나는 무죄하다고, 나는 의롭다고, 나는 안전하다고,
나는 평안하다고 자위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선언하심 이었습니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죄의 삯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똑같은 죄인들이기에 육체의 죽음과 인생의 비참함을,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의 날을 그 누구도 결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선포였습니다.
물론 회개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진정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회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건과 사고를 통해 심판의 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 삶에 고난을 피해 가게 하심이 아니라,
죽음조차 비참이 아닌 유익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