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구원받는 자가 적으냐’는 어떤 이의 질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언제든 닫힐 준비가 된 문입니다.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경쟁의 여부에 따라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가 되기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경쟁은 악한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니 자신은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자신을 먼저 된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단시키고 싶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존재를 제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헤롯 안디바의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지역을 떠나지 않으면 헤롯이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경고의 형태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입조심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입니다.
어쩌면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실권자의 권력 앞에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위협적인 소식을 전해 들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자에게 메세지를 남기십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일은 없다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작정하신 길을 그대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예수는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헤롯 안디바의 통치 구역인 이곳 베레아 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문제는 지금 예수님께서 작정하고 향하여 가고 계신 곳이 예루살렘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지만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그땐 정말 때가 된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죽임당했듯 그리스도도 예루살렘에 이르면 곧 죽임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몰라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갈 길에 대해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을 언급하신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헤롯뿐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향한 열정과 공로를 그리스도께 외면당하고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위선과 외식을 지적당한 바리새인들도,
율법을 틀어쥐고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듯 엉뚱한 내용을 가르친다는 책망을 받으며 사람들 앞에서 무지와 무식을 폭로 당한 율법 교사들도,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생트집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그리스도께 창피를 당하기 일쑤인 종교 지도자들도
모두 예수를 제거하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예수의 고향 나사렛에선 유년 시절부터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과 이웃들조차 예수를 절벽에서 밀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총독 빌라도를 향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사람들은 백성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수를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학문에서, 가치관에서, 인생에서, 가정에서, 소비 패턴에서 예수를 제거하려고 힘씁니다.
마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놓여진 예루살렘처럼, 그러나 이제는 버림받고 황폐해진 예루살렘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목을 틀어쥐고선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예루살렘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계획은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이 먼저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락한 예루살렘의 계획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배신하고 배반한 백성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가장 먼저 세운 존재는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태초 전부터 세우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작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다른 누군가의 위협이나 술수로 인해 바뀌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신 그분만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계획대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예루살렘을 향하여 죽임당하기 위해 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계획의 절정을 ‘예수를 죽일 마음’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에게 선언하셨습니다.
‘삼일째는 완전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에게 갖은 고난을 받고 죽음에 던져지게 된다 할지라도 다시 온전케 되실 것임을,
부활하실 것임을 예수님은 담담하게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이 계획입니다.
그것이 주가 가실 길입니다.
죽음으로 끝나지 않기에,
실제로 그리스도를 못 박아 죽이는 그 행동마저,
예수님께는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를 제거하려 마음먹고 또 시도하려는 이들을 늑대나 사자가 아닌 ‘여우’라고 부르십니다.
여우는 교활하고 재빠른 들짐승입니다.
굴을 파고 살기에 방치하면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귀찮은 동물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헤칠 능력은 없는 가볍고 하찮은 동물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이 가실 길과 계획을 보여주십니다.
죽음으로도 위협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