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인생은 쉴 것 다 쉬고 쫓아가기에는 너무 치열하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고, 이 투쟁은 쉽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를 이 삶의 투쟁에서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삶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공감할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면 괜찮을까요? 아닙니다.
열심히 사는 만큼 성과를 내는 사람일수록 쉬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일한 만큼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일을 더 멈추지 못하게 합니다.
하루 더 일하여 얻는 순이익은, 반대로 쉬는 동안 잃게 되는 손해로 계산됩니다.
직장인보다 자영업자들이 쉬지 않으려는 유혹에 더 취약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비교적 적은 직장인이면 괜찮을까요?
직장에서는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회사는 워커홀릭을 선호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런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고용주 입장에서 사람은 고용의 대상, 사용의 대상이기에 자발적 워커홀릭은 능력자로 인정받습니다.
더 일한 만큼 더 사례하고, 그만큼 더 인정하는 회사는 형평성 있는 그리고 능력을 잘 평가하는 좋은 회사가 됩니다.

워커홀릭은 다른 중독들에 비해, 훨씬 건전하고 바르고 부지런한 덕목처럼 평가받기 일쑤입니다.
목회자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가 목양을 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이라며 사생활의 시간과 사역 시간을 구별 없이 사역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목회자를 참목회자상으로 삼고 목사의 표본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삶도 그러니 성도의 삶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렇게 살아야 열심히 사는 것이라 평가받는 세상에서 쉰다는 것은 참 태평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투쟁 같은 삶 속에서 하루를 강제로 쉬게 하셨습니다.
의도적으로 생계를 위한 일을 멈춰서게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이 날은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아니라 영혼을 그리스도로 가득 먹이는 만족의 날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나머지 날도 한숨 돌리며 쉬면서 살게 됩니다.
미래는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를 쉬게 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할 때 우리는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손에 쥔 것을 놓고, 근육의 긴장을 풀고, 쉬게 됩니다.

토끼는 정글에서 배를 뒤집고 낮잠 자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자는 정글에서 유일하게 배를 뒤집고 낮잠을 자는 동물입니다.
휴식과 여유는 강한 자의 특징입니다.
그 사자 옆에서도 낮잠 자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사파리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사자도 겁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인생은 여유 있어집니다.
삶은 안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