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설교는 성령의 강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복잡한 논리 단계를 한정된 시간 안에 풀어가며 중간에 예기치 않은 추가 설명까지 더해지느라 적용 부분의 논리가 도약하는 듯 느낀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갑자기 소명 이야기가 나와 당황하셨을 성도들을 위해 칼럼에서 그와 관련하여 적어봅니다.

오순절 성령이 오셨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했습니다.
이전에는 할 줄 모르던 언어이지만, 성령은 그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주시면서까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령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큰일.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구약을 가지고도 깨닫지 못하던 천국의 비밀이었습니다.
사실 숨겨진적 없이 계시를 통해 밝히 드러난 비밀이었으나,
죄인들의 눈에 율법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며, 그런 죄인들의 소견에 구원자가 사람으로 와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승리하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큰일을 말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듣게 하십니다.
정작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술에 취한 소리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인지 풀어 설명합니다.

이전에는 선지자만이 예언과 환상과 이상과 꿈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계시받았으나,
이제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은 선지자가 되어 하나님의 큰일을 깨닫게 하시고 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성령이 오신 이유이자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말이 통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은 소통의 한계와 벽을 넘어서 하나님의 큰일이 전해지게 하십니다.
이날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기 위해, 말이 다르던 사람들과 말이 같아지게 하신 은사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은사는 다양하나 목적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선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따라 각자의 자리로 부름을 받아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보내신, 우리 삶의 터전은 그저 어쩌다 살게 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따라 서 있는 곳입니다.
사명을 위해 은사를 주시고, 은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소명입니다.
즉 소명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시는 은사의 활용처입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만의 언어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언어로 전해져야 합니다.
과학자에게 하나님의 큰일은 과학이라는 언어로 전해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이 들려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삶의 터전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소명이 곧 우리의 은사요, 우리의 사명지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언어는 다르나 하나님의 큰일을 들은 것은 같았듯,
우리 각각의 소명은 다르나 사명은 같으니,
가슴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심겨진 사람마다 선교사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가슴마다 선교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선교적 사명을 띤 선지자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소명을 잘 감당하도록 각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