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들으라고 여러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은
이제 대상을 바꾸어 제자들에게 또 다른 비유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바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입니다.
어떤 부자에게 그의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려옵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그 말이 사실인지, 그간의 일을 정리하여 보고하라 합니다.
청지기는 직업을 잃게 될 위기를 맞게 되자 앞으로는 육체노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이 벌린 일들을 수습하는 동시에 보험도 준비하려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 원금을 삭감해 주는 호의를 베풉니다.
기름 백 말이면 천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값어치입니다.
청지기는 그중 오백 데나리온을 깎아주었습니다.
밀 백석, 가격으로 환산하여 이천오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에게도 오백 데나리온을 깎아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팔천만원 빚진 자와 2억 빚진 자에게 각각 사천만 원씩을 깎아준 셈입니다.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렀다고 하였으니 이 두 사람 이외에도 빚진 자들이 더 있었다는 말입니다.
대출의 원금을 대폭 깎아 새로이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사문서위조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이로써 주인에게는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어찌 된 일인지 청지기가 그간 일을 지혜롭게 해왔다며 그를 칭찬합니다.

이 비유를 읽어본 사람들이 예수께서 비유를 통해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해 버렸다는 점 때문입니다.
도대체 주인은 왜 청지기를 칭찬한 것일까요?
비록 그가 행한 일이 주인에게는 손해를 끼치는 불의한 일이었을지라도,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일었기에,
범죄를 계획하고 사람을 모아 작당하고 추진하는 그 과정만큼은 재치 있고 기지가 번뜩이는 것이었기에,
미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대범함과 기획력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여 칭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만약 예수께서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혜만큼은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칭찬하고 계신 것이라면,
성경 말씀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의한 일을 행하라고 독려하는 가르침이 됩니다.
예수께서 지금,
천국에 입성하기 위해서라면 정의이든 불의이든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시도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게 지혜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지혜만을 높이 사서 칭찬하고 계신 것이라는 해석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무책임한 해석인 것입니다.

사실 이 청지기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이미 끝이 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를 옳지 않다고 불의하다고 평가를 완료하셨습니다.
그의 불의함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칭찬한 이는 예수님이 아니라 이야기 속의 부자 주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 규모와 실체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청지기에게 맡기고 의존하더니,
심지어 부패와 횡령의 혐의를 받고있는 당사자에게 정리의 일을 맡기기까지 합니다.
그러고는 그의 불의한 의도와 시도를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의 일 처리에 탄복하며 지혜로움을 칭찬합니다.
예수님은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10:16).
그러나 이야기 속의 청지기는 뱀처럼 사악했습니다.
반면 주인은 비둘기처럼 미련한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은 선한 데에 지혜롭고 악한 데에 미련하라고 하시지만(롬16:19),
청지기는 악한 데에 지혜로웠습니다.
뱀처럼 사악한 불의한 청지기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해당하는 인물이라면,
청지기의 불의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비둘기처럼 멍청하게 속아왔던 주인은
자신들이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에게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들을 칭찬하고 존경하여 맹목적으로 따라다녔던
지금까지의 백성들과 제자들을 말합니다.
주님은 이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맡겨주실 계획이십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와 같이 미련한 상태로는 안 될 일입니다.
즉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청지기에게 속아 넘어가는 미련한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가 되어 아버지의 나라에 깊은 관심과 마음을 두고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살펴 진리를 얻고 그 나라를 잘 운영하기를 바라십니다.
율법 해석을 독점하고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삭감시키고
갚을만한 것으로 바꾸어 기복적 신앙으로 백성들을 이끌어
하나님을 기만하려는 이들에게 계속하여 당해선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선 유산으로 받게 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말씀에 해박해야 합니다.
마음을 두고 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빛의 시대가 오면 달라질 것입니다.
빛의 아들들이 진리에 눈을 뜨면 달라질 것입니다.
빛의 고유 기능으로서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불의에 충성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재물에 충성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기에 불의한 재물에 빛의 아들들이 충성하는 방법은
빛의 아들들답게 어둠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빛의 아들들이 불의한 제물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악한 데에 지혜로운 이 시대의 아들들이 아니라
착하고 충성된 종처럼 의로움을 드러낼 빛의 아들들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의 십자가는 빛의 아들인 우리에게 낮과 같이 밝은 빛의 시대가 오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