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고쳐 ‘제사장에게 가라’ 말씀하신 후,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그중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나병은 깨끗해졌지만
그렇다고 아직 정상적으로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친히 기다리신 예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하신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에게 구원을 선포하신 것도 파격적인 일이겠지만,
그보다 더 바리새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말씀의 내용 그 자체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을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에게 있어 구원이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지게 될 때에야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자신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새삼스레 영적인 의미의 구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이란
로마와 같은 외세의 압제에서 이 민족을 해방시키고 온 세상을 정복할 제국이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민족적구원이야 말로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구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그들이 생각하기에 예수께서 누군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시려면
적어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들에게 이렇게 구원을 선언하시곤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신 지도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기대하던 메시아의 제국은 도무지 시작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내심이 바닥난 바리새인들은 그래서 예수님께 ‘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선 질문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나라는 보이지 않는 나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서가 아니라 너희 마음속에 이뤄지는 나라’라는 뜻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그런 나라라면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얼마 전 제자들에게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자들이 있다’고 가르치신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 중 몇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임하셨음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믿는 사람마다, 이미 그의 통치를 보고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나라여서가 아니라,
이미 그들이 모여 있는 그 가운데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서 계셨고,
그를 믿는 사람들로 구성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바리새인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처럼,
그들은 예수를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 나라에 관해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반면 제자들에게는 그들이 ‘인자의 날 하루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에겐 인자의 날 곧 여호와 하나님의 날이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이란 언제나 멸망의 날,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의 날을 함께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심판과 구원은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심판을 보지 않게, 겪지 않게 하시는 은혜가 바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120년간 준비한 방주 안으로 들어가던 날,
홍수가 모든 것을 삼키는 것을 노아는 볼 수 없었습니다.
방주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방주에는 천장 바로 아래에 환기를 위한 창문만 있었을 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은 없었습니다.
롯이 소돔성에서 도망쳐 나오는 날에도,
불과 유황이 그 도시를 심판하는 모습을 롯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소알성까지 도망쳤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날을 묘사하시면서 일상을 언급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심고, 사고, 파는 일상 가운데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미 심판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없듯이,
우리는 이미 시작한 심판의 날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듯,
하나님은 우릴 위해 대신 심판받으신 그리스도의 죽으심 위로 제자인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자신의 육신을 방주로 삼아,
환란의 시기를 뚫고 가는 우리의 삶을
심판의 날이 아닌 천국의 시간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