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는 자”라고 주인을 부릅니다.
그에게 있어 주인은 ‘스스로는 씨앗 하나 자기 손으로 심지 않고, 그저 종들의 수고로 추수의 결과만 얻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노동력 착취자일 뿐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놀아나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는 듯합니다.
주인의 부당함(?)에 결연히 일어나 정의를 울부짖는 그의 모습을 볼 때,
그는 스스로를 ‘운명을 거슬러 싸우는 투사’가 자신의 눈물겹게 멋진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위치를 심각하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단한 자신감과 다르게, 안타깝게도 그는 주인에게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투사가 아니라 종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위치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일 뿐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롭고 정의롭고 깨어있는 사람이라 높이 평가할지라도, 실상 그는 악하고 게으른 한낱 종일 뿐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피조물인 자신이 창조주보다 지혜롭다고 여깁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새까맣게 망각한 채 오히려 하나님이 불의하고 부당하며, 자신이 더 의롭고 옳다고 여깁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진정한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지만,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인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면 자신은 그저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종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의 실체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사람들은 인생의 주인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죄인들의 신앙입니다.
그 신앙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인을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악하고 게으른 죄인들의 민낯입니다.
스스로를 자격이 충분한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자평하는 자아도취가 바로 악하고 게으름입니다.
죄인들은 원래 상태보다 더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하고 화장해보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곧 새벽의 빛 앞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의 착각은 진실이 아닙니다.
가짜뉴스입니다.
인생의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의 평가와 같은 분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맡긴 주인은 돈이 모자라서 우리에게 펀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에게 영광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영광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은, 짐이 무거워 우리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의 짐을 메면 인생의 짐은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그분을 우리의 주인으로 삼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맛봅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는 의로우시며,
그는 사랑이시며,
그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며,
그는 우리의 남편 되시며,
그는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시며,
그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시어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와 자유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