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며
그들에게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비유의 목적을 먼저 밝히신 것입니다.
재판장에게 간청하는 과부의 모습에서 항상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이 비유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재판장은 예수님에 의해 이미 가치 평가가 끝난 인물입니다.
그는 불의한 재판장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을 만큼 자타공인 불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과 무관하다고 여기고 있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는 상식이나 도덕, 정의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이 재판장은 사람을 무시하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동정심이나 측은지심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판결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도, 도덕과 정의의 선명한 기준도 없는 것이니,
사실 그는 절대로 재판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는 한 과부가 찾아옵니다.
재판장은 당연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재판장이 보기엔 과부의 그 어떤 것도 재판장을 움직이게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동정심이나 정의감 따위는 애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과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날마다 재판장을 찾아가 간청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불의한 재판장이라 하더라도 날마다 귀찮게 하고 괴롭게 하는 과부를 결국 이기지 못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예수님은 재판장이 한 말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불의한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의 간청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도 간청을 들어주실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어차피 간청을 들어주는 것이 동일하니,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 같은 분이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 같은 분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판장입니다.
불의한 자는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려 할 때가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보고 참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악을 보시고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과부가 고소를 진행하지 않았을지라도 정의를 이루시기 위해 범죄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응징하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속히 응징하시고 반드시 우리의 억울함을 해결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귀찮게 굴어야 움직이는 불의한 자가 아니십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만났다면 그렇게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가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과부가 계속하여 떼쓰고 간청하며 재판장을 밤낮없이 괴롭히고 있다면,
그건 과부가 그를 의로운 재판장이 아닌 불의한 재판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낮없이 간청하고 귀찮게 괴롭힘으로써 불의한 재판장을 움직이게 하듯,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여 내 삶의 문제에 개입시키려는 수단으로써 기도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을 의로운 재판장이 아니라 불의한 재판장으로 대우하는 것이 됩니다.
그의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기도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차일피일 할 일을 미루는 게으른 하나님이라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불의한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속히 원수를 심판하실 하나님께 우리의 원수 갚는 것을 맡기는 일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우리 삶을 판결하실 그분이 불의한 분이 아니라 의로우신 분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발원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생각과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내 삶에 개입시키고 동원하는 수단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내 삶에 동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로우심과 선하신 판결에 전적으로 삶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소원과 필요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우리를 실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모든 것을 맡기고 더 이상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게 합니다.
기도는 내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불의한 분이라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원망했던 나의 낙심이 변하여 신뢰와 안정과 기쁨으로 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선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낙심으로 주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선한 일을 하며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을 오래 참으신 그분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기도 할 때 주님 뜻이 바뀌는 게 아니라 내 뜻이 바뀌고,
기도할 때 내 뜻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뜻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로 낙심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게 하시는 의롭고 자애로운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