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예수님 곁에는 어린아이들과 어린 아기를 안고 온 사람들로 인해 정신없이 북적였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들로 인해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이 방해를 받을까 전전긍긍하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과 그들을 제지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다고 질서가 쉬이 잡히지는 않았을 테니 제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물론 평소에도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집회에 자주 참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제자들이 곤혹스러워하며 부모들을 꾸짖을 만한 일이 그동안은 발생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오늘은 다른 날들보다도 유독 아이들이 운집한 특별한 날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날은 아마 일 년에 한 차례 있는 대속죄일의 전날이었을 것입니다.
유대교의 예식서 중 <막초르 욤 키푸르>에는
대속죄일 전날에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장로와 랍비를 찾아가 축복 기도를 받는 문화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직 율법을 잘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순종하지도 못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어 대속죄일을 정결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에겐 자녀들이 축복 기도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제자들에게 그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계신 이 시간을 방해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제자들의 열심은 집회를 방해하는 장애 요소를 제거하는 일에 진심을 쏟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저지하는 일을 제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라고,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라며 품에 받아 든 아기와 어린아이들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뿐 아니라 모여든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다면 울고 불고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꾸짖던 제자들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방해자인 것입니다.
제자들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를 지키고 도우려 한 것이었는데,
그들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들과 젖먹이 아기들이 어른들에 비해 뛰어난 점은 무엇일까요?
대체 아이들의 어떤 면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게 한 것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같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 바로 어린아이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대체 아이들의 어떤 부분이 천국에 합당한 모습인 것일까요?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어린 것이 구원의 요소일 수는 없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라면, 구원받기 위해선 어릴 때 죽어야만 하는 것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럼 혹시 아이들의 순수함과 의심 없는 믿음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나 어린아이의 의심 없음은 그의 어리석음을 인함입니다.
어린이의 믿음이란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소치일 뿐 결코 지혜의 미덕이 아닙니다.
그런 어리석은 믿음이 진리가 아닌 것들을 향하여 발동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만희와 정명석을 따르는 이들의 믿음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소유한 이들이라고도 도무지 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 특히나 젖먹이 아기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탐구하거나 그의 가르침과 율법에 도저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커녕 걸음마도 떼지 못했고 찬양은커녕 옹알이도 떼지 못했습니다.
즉 젖먹이를 포함한 모든 어린이의 특징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한 존재라는 점뿐입니다.
누가 도덕적 성취나, 종교적 공로나, 율법적 순종, 영적인 시도에 있어 아이들보다 못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무능력하고 공로에 있어 전무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은 그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왔을 뿐이었지만,
아기는 그저 엄마의 품에 안겨 왔을 뿐이었지만,
예수님은 어린 아기를 받아안아 주시고선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격 없는 아이들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우리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하나님 나라에 속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줍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우리 삶에 침입하여 은혜로 이끌어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나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천국에 들어간 이들은,
이제 소유한 천국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걱정 없는 아이처럼 어디서나 놀이터가 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듯, 하나님 나라 안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과 함께 천국은 확장될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를 품에 안아주시고,
천국의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만족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