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진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지만,
해수면보다 낮은 도시 여리고에서 유대 지역 높은 산지의 예루살렘까지
끊이지 않는 가파른 오르막을 쉬지 않고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일행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리고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유월절을 앞둔 여리고는 수많은 인파로 정신없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몰려온 수많은 인파는 여리고의 어느 한 곳에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습니다.
메시아라고 불리고 있는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 파다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그분을 보기 위해 따랐습니다.
인산인해의 여리고에는 삭개오라는 이름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뜻은 순결하고 결백하다는 뜻이었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그가 가진 이름 뜻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그를 부정한 죄인이라며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직업이 세리였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정복자인 로마에 바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로마는 피지배 국가에 부과된 세금을 세리들이 징수하는 동안,
추가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일이 발생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방치함으로써 세리들의 개인적 탐욕을 이용해 세금 징수를 원활히 이뤄내도록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나라와 민족의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세리들을 민족의 배신자요,
하나님 나라의 배반자요, 로마의 앞잡이요, 부정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물론 로마군을 등에 업고 있는 세리에게 아무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아무도 세리를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공동체에서 물리적으로 격리된 사람들이라면,
세리들은 유대 공동체에서 정서적으로 격리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삭개오는 세리 중에서도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누구도 세리장 삭개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몰려든 수많은 인파를 뚫어낼 피지컬이, 작은 체구의 그에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닌 삭개오였기에,
사람들은 더욱 견고히 어깨를 붙이고 그들의 마음의 벽만큼 단단한 바리케이드를 구축했습니다.
사람들의 경멸과 혐오와 증오에 밀려 삭개오는 뒷걸음질 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는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라도 예수의 얼굴을 뵙고 싶은 간절함이 삭개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올라간 돌무화과나무 아래에 예수께서 이르시자,
예수는 고개를 들어 삭개오를 바라보시며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여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밤 너희 집에서 유하여야 하겠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가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삭개오에게 놀라운 기쁨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향합니다.
뒤통수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은 삭개오뿐 아니라 예수와 제자들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예수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셨다!”
삭개오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예수님께 그간 품어왔던 그의 속마음을 쏟아놓습니다.
“주여 저는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주고, 착복했던 일이 발견될 때마다 네 갑절로 갚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사용한 표현들은 모두 미래형이 아닌 분명 현재형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개과천선하는 장면이 아니라,
놀랍게도 개과천선한 삭개오를 예수께서 찾아와 만나주시는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그간 당해온 혐오의 시선에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서이거나,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구제에 힘써왔는지 공로를 늘어놓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얼마만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는지를 고백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왔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예루살렘을 코앞엔 둔 이 시점에,
사실 제일 예수를 꺼려하고 피해야 할 사람들은 친로마 부역자들 즉 세리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를 만나 뵙길 기대하고 있었고 기쁨으로 예수를 맞이했습니다.
즉 삭개오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기다리며,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섬겨왔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세리장의 자리를 삭개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착취와 피해가 극심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년 전 세례 요한이 회개한 세리들에게 가르쳤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그런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그의 소망, 그의 마음, 그 순결함과 결백함을 잘 아시는 그분께서 삭개오를 찾아와
그의 모든 것을 알아주시며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그것으로 삭개오는 충분해졌습니다.
그의 존재는 만족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만족하다는 것은
예수를 만나 본 사람들은 압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 소망의 실체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