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 지역은 총독을 통해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고 있었기에,
예수를 죽이려 한다면 그를 번역자로 몰아 로마의 손을 빌려 죽이는 방법뿐이 없었습니다.
이를 위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께 정탐을 보냅니다.
정탐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으로 구성된 사람들로서 예수에게 말실수를 유도해
로마의 반역자라는 구실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정탐들은 함정을 준비해 놓고 자신들이 예상한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예수께 ‘당신은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라며 프레임을 명확하게 각인시킵니다.
고양이가 쥐를 몰듯 구석에 몰아놓고서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함정 질문을 예수께 던집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는 신학적인 질문이거나, 일상과 신앙에 대한 궁금증이나 바르게 순종하기 위한 조언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분명 정치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바란 답변은 ‘세금을 내지 말라’는 대답이었을 테지만,
사실 뭐라고 대답하더라도 괜찮았습니다.
세금을 내라고 대답하든지 세금을 내지 말라고 대답하든지 무엇이라고 대답하더라도
예수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금을 내고 말고의 문제로 반역의 죄까지 몰리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약 30년 전에 벌어졌던 갈릴리 유다의 반역 사건 때문입니다.
갈릴리 유다는 로마 황제가 아닌 하나님만이 왕이시라 선언하고 봉기하여
예루살렘과 성전에서 로마인들과 이방인들을 쫓아내어 성전을 청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반란의 실질적 이유가 되었던 인두세를 거부했습니다.
인두세는 사람의 머릿수대로 내는 세금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향했던 이유도 인두세 때문이었습니다.
인두세는 일 년에 한 데나리온씩이었는데,
문제는 당시 통용되는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얼굴과 그를 신성시하는 글들이 적혀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왕의 왕, 신의 아들, 최고 대제사장이라는 표현과 함께 그려져 있는 황제의 옆얼굴은
갈릴리 유다에게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우상숭배를 연상하게 한 탓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갈릴리 유다는 로마에 의해 척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여태껏 데나리온에 그려져 있는 신성모독의 말들과 우상의 형상을 타파하고
로마를 무너뜨려 자신들을 구해줄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뜨겁게 불타올라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향한 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대상이 바로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대답한다면 백성들의 실망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게 될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편들어주지 않는 예수를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혹은 그들의 바람대로 ‘세금을 내는 것은 우상 숭배니, 세금을 내지 말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신다면,
이는 30년 전 갈릴리 유다의 반란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에 현행범으로 고발할 여건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며칠 후 이들이 예수를 총독에게 고발할 때 죄목을 보면,
예수께서 ‘세금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셨다는(눅23:2) 거짓말로 고발 사유를 위조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금을 내지 말라’고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 티벨리우스의 형상과,
‘티벨리우스, 왕중의 왕, 신의 아들, 최고 제사장’이라는 글이 적혀있는 데나리온의 주인이 가이사임을 인정하셨습니다.
가이사가 로마 황제의 힘과 통치력으로 동전을 주조하여 유통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데나리온이 통용되고 있는 모든 곳이 그의 실질적 통치를 받고 있는 곳, 즉 가이사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에 그려져 있는 가이사의 형상과 글을 증거로 하여 그의 실질적 통치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께서 단순히
‘로마에 복종해라’
‘제국주의에 순응하라’
‘세금을 내는 착한 신민이 돼라’
‘묵인하고 얌전히 따르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되돌려주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첨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박혀있는 모든 것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그래서 그에게 바쳐져야 한다면,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되돌려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것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가이사의 형상이 주조된 것들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마다 하나님의 것이며 주께 드려져야 하는 법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과 지혜와 통치의 아름다움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은
‘가이사의 형상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그러나 돈은 주어도 충성은 주어선 안된다.
너는 하나님의 형상이니 가이사가 아닌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되돌려드리기 위하여,
우리를 대신할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 신의 아들, 가장 높은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다해 온전하게 드려지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