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로마의 반역자로 몰아가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연합한 정탐의 시도가 좌초하고,
대제사장을 대변하던 사두개인들의 시비도 좌절되자,
이번엔 먼저 예수님이 남아있는 서기관들을 정조준했습니다.
서기관들은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율법에 대해 고등 교육을 받고
성경을 필사하는 일과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 교사로 불리기도 하며,
산헤드린 공의회에 속하여 율법적 자문을 해주거나,
재판의 배심원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서기관들을 가리켜
“당연한 듯 시장에서 문안받으려 하고, 잔치의 상석이 앉으려 하며, 긴 옷을 입고,
길게 기도하는 서기관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서기관들의 엄청난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폭로하시는데,
그것은 그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라는 폭로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유대법뿐만 아니라 로마법에서도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받게 될 심판이 더욱 엄중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당시, 여자는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또한 남자만이 재산을 관리할 수 있었던 유대 문화를 생각해 볼 때,
아들도 없이 그리고 재산을 관리해 줄 남자 친척도 없이 혼자가 된 과부라면 그 재산을 관리해 줄 후견인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후견인 역할을 서기관이 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일이 정말 있었다면 중간에 과부의 재산을 착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예수님이 특정한 어느 한 사례를 들어 서기관들 전체를 가리켜 ‘서기관들을 주의하라’고 매도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예수께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을 주의하라”며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중에
갑자기 시선을 돌려 헌금함을 바라보셨습니다.
함께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도 헌금함을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부자가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안 곳곳에 설치된 헌금함은 성전세를 위하여 7개, 일반 헌금을 위해 6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나팔 모양의 깔때기에 헌금이 부딪히게 되면 소리만으로도 얼마를 헌금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뒤를 이어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하자,
그 모습을 보시고 “과부가 제일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의 헌금보다 많이 넣었다고 할 만큼 과부가 많은 액수를 헌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렙돈이면 참새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액수입니다.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1500원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부의 생계를 위한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과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헌금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과부의 모습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지금 과부의 가산이 헌금함에 빨려 들어가고 있고,
유대교라는 종교와 성전이 과부의 가산을 집어삼키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사실 성전은 과부와 같은 약자들을 헌금으로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과부가 헌금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제 기능과 역할을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과부가 가산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예수님은 지적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과부가 자신의 가산을 모두 잃는데도 불구하고 헌금하는 이유입니다.
과부의 삶은 팍팍하고 어렵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구원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끼니를 거르게 되더라고 부정한 백성이 되어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헌금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믿었던 탓입니다.
성전이 해야 할 의무는 외면하면서,
헌신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율법 해석을 가르친 이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바로 율법교사들, 곧 서기관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범죄의 수괴로 서기관들을 지목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곡해하고 왜곡하고 미혹한 서기관들이야말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잘못된 가르침 위에 쌓여진 성전을 다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있지 않게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성전뿐 아니라 잘못된 종교 제도 전체를 모두 무너뜨리겠다는 선언입니다.
얼마나 오래 기도하는지 기도 시간으로 영적인 성숙을 판가름하고, 헌금으로 구원의 여부를 가늠하는 이들,
오직 겉으로 평가되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며,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로를 주장하는 서기관들은
하나님 앞에서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도 서기관들같이 주의 이름을 사용하여 미혹하려는 자들이 계속 있을 것임을 알려주시며,
미혹하는 자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가르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공로주의와 기복주의에 물든 교회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답지 않는 교회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무너짐은 누군가에겐 소망이 됩니다.
건축자의 버려진 돌이 모퉁이 돌이 되듯,
교회가 십자가의 죽음 위로 쓰러진다면,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교회를 온전하게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잘못된 것을 무너뜨리시고, 진리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예수의 십자가 위로 쓰러지는 은혜로 우리를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