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가산을 삼키게 만드는 공로주의와 율법주의의 잘못된 종교적 가르침 위에 쌓여진 성전을 무너뜨리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 진정한 성전이신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서,
우리를 대신해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다시 살리실 비밀스러운 예정을 설명하심이었으나,
이를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이런 일이 대체 언제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게 될 날에 대하여 예언하십니다.
극심한 환난 끝에 결국 예루살렘이 군대에 의해 에워싸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이 세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약 40년 후에 실제로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환난은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시내의 절반을 소각시킨 대화재 사건의 탓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린 네로 황제에 의하여 교회를 향한 대 핍박은 시작되었습니다.
너희 중 몇이 죽임당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때 사도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 당했습니다.
불안한 정세를 틈타 유대 지역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군이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핍박의 원흉인 네로 황제가 급사하자 유대 전쟁의 진압군 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가 네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게 됩니다.
이때가 AD70년입니다.
그날 예루살렘의 성벽과 함께 성전도 철저히 파괴되고 무너졌습니다.
일곱 등대를 비롯한 성전의 기물들은 모두 약탈당하였고 그날 이후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까지도 복구되지 못한 채 파괴된 그대로 땅속에 파묻혀 방치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 중에서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
것은 인자가 구름 타고 오는 모습을 볼 것이라는 예언의 약속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언급하신 이유는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꽃이 핍니다.
그리고 꽃이 수정되고 하나둘 꽃잎이 떨어지고 나면 그때부터 나무에 잎이 무성해집니다.
결실의 계절인 여름이 다가온 것입니다.
마치 무화과나무에 잎이 피면 결실의 계절인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듯,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되거든,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도 인자가 구름 타고 이 땅에 오시는 날 실제로 일어나게 될 것임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으로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빗대어 재림의 날을 묘사합니다.
교회를 향한 환난 가운데에 예루살렘이 멸망했듯,
성도의 삶을 향한 말세의 환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예수께서 심판의 주로, 또한 구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누군가에는 멸망의 심판이요,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결실입니다.
환난의 때를 인내로 이겨낸 자들은 예수께서 구름 타고 오시는 날, 생명의 결실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가르치신 목적은,
언제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될 것인지, 어떻게 파괴될 것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간일 것인지를 알려주시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신 이유는,
이와 같이 인자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선언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끝이 없을 것 같은 환난에도 반드시 종말이 올 것이라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에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환난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결실로 부활하게 되는 날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지 않고 온전하게 하실 주님과 함께 할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약속이 확실하기에 이 땅의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할 이 땅의 환난을 출산의 고통으로, 육아의 괴로움으로 비유하십니다.
출산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인하여 모든 괴로움과 고통을 잊습니다.
고난을 망각한다는 말이 아니라, 고난에 굴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품에 안은 자녀로 인한 압도되는 기쁨이 있기에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이 기쁨을 고통과 맞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으로 우리를 십자가 죽음에서 결실하여 얻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주의 자녀 된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성령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된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닮아갑니다.
성화란, 그리스도의 다시 사신 생명이 우리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우리 것이 되며,
그리스도의 자녀 됨이 우리 것이 되어,
그리스도가 얻으신 복락이 우리 것이 되는 성화의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그리스도의 고난도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 길을 갑니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받으셨듯 성령을 받아,
세례를 받으셨듯 세례를 받고,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셨듯 우리도 순종하며,
그가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쫓아가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이 육체 가운데 채우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리스도인에게는 주의 고난이 나의 것이 되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와도 주의 나라와 영광을 사랑하는 압도하는 기쁨이
모든 환난의 때를 이겨내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