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양치기로 살아왔던 다윗은,
목자와 양 사이의 친밀한 유대감이 어떻게 쌓이고 형성되는지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이미지로서 목자의 모습을 떠올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목자의 삶이란 여유롭고 낭만적인 것과는 사실상 거리가 멉니다.
목자는 푸른 초장과 물가를 찾아 양 떼를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목자는 양들의 훈육자이자 동시에 의사여야 합니다.
또한 사나운 맹수들의 공격에서 양 떼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호자의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밤에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는 게 아니라 양들과 함께 동굴에서 잡니다.
이는 밤새 양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목자들은 수시로 양들의 수를 셉니다.
한 마리라도 수가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양이 어딘가에 낙오되고 실족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양은 극심한 근시이기 때문에 무리에서 종종 이탈되곤 했는데,
낙오된 양이 얕은 구덩이를 밟고 넘어져 네발이 허공에 뜰 정도로 뒤집히기라도 한다면
수북한 양털 때문에 스스로 몸을 뒤집어 일어서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낙오된 양들, 실족한 양들이 목자와 떨어진 채 곧 우리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탈진과 탈수로 서서히 죽어가게 될 것이지만,
그전에 그런 양들을 노리는 맹수들에 의해 결국 하룻밤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목자는 낙오된 양을 찾아 나섭니다.
낙오된 양을 찾아내어 양의 우리로 돌아옵니다.
다치기라도 했다면 업어서라도 우리로 돌아옵니다.
다윗은 이런 목자의 수고를 ‘내 영혼을 소생시키셨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소생시키셨다, 살게 하셨다는 단어는 돌아오게 하셨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 ‘슈브’가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은 포기하지 않고 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 자신도 그런 목자였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목자의 희생과 노력과 사랑으로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곰과 사자에게 양이 물려갔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사자와 곰을 쳐 죽이고 맹수들의 입에서 양을 구해내는 목자였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어린 소년이 사자와 곰을 상대할 자신이 넘쳐서 맹수에게 달려들었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양을 위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끝까지 쫓아갔던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사자와 곰의 이빨과 발톱에서 양을 구해낸 선한 목자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힘과 능력이 양을 구해내고 자신의 생명을 지킨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자와 곰의 이빨과 발톱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그는 고백합니다(삼상17:37).
다윗은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히 나를 따른다’고 노래하며,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른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다프’는 추격한다, 끝까지 쫓아간다는 뜻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끝까지 쫓아와 맹수의 입속에서조차 지키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고백은
다윗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너무나 아름다운 시였습니다.

다윗의 시는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원수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사망 권세조차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사망 권세에서 건져내시려고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우리의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그의 사랑은 우리를 끝까지 따라와 우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목자이시면, 그의 사랑과 선하심이 우리와 함께한다면,
그가 지키는 양은 무서울 게 없습니다.
누가 그의 사랑 앞에서 그의 양을 빼앗아 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대적 사망 권세조차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는 그의 양을 헤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무한 신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으로 노래합니다.
골짜기는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물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많은 짐승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물을 마시기 위해 찾아온 짐승들을 노리는 포식자, 맹수들도 많은 곳입니다.
짐승들에게 있어서 골짜기는 아이러니하지만, 생존을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이 도사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에게 있어서 골짜기는 사망의 음침한 곳이 아니라 그저 푸른 풀들이 가득한 쉴만한 물가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맹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해도 목자와 함께 있는 양들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신다’고 노래합니다.
목자와 함께 있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걱정 없이, 두려움 없이 배불리 먹을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됩니다.

다윗은 원수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날을 꿈꾸며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대적의 어떤 방해와 술수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개의치 않고 살아갈 담대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두면 눈치 보지 않습니다. 주눅 들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겁먹지 않습니다.
목자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지켜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 삶을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만드시는 목자가 되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