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양을 준비해야 하는 날의 해가 지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안내로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유월절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유대인들이 ‘세데르’라고 부르는 일정한 순서에 의해서 진행되는 특별한 식사입니다.
총 네 번의 포도주 건배로 순서가 진행되는데,
이 ‘세데르’ 식사 중에서 세 번째 순서를 마치며 먹는 무교병과 포도주 건배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성찬식에 해당합니다.
평소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라고 가르치셨던 예수님은
세 번째 순서에서 본격적인 식사를 마치신 직후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살과 피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전통적인 유월절의 ‘세데르’ 식사에는 각 순서마다 출애굽 당시를 떠올리며 구원의 은혜를 재현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뿐 아니라 바벨론 포로 시기에서도 그들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출애굽 때에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이 문설주에 발라져 있는 어린양의 피를 대신 밟고 넘어가던 첫 유월절 당시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잡고 서서 급하게 먹던 것과 달리,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부턴 남의 땅이 아닌
우리 집, 우리 땅에서 안식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기 위하여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식사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월절이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관하신 이 마지막 식사는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따르던 유월절 식사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를 시작하시면서
‘이제 이 식사 이후로는 하나님 나라에서 유월절을 이루기까지 드시지 않겠다,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신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유월절을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으로서 그 성격과 정의를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 식사는 과거를 향한 식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식사였습니다.
이로써 어린양의 피를 밟고 죽음이 넘어간 출애굽의 사건은, 앞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날 진정한 유월절의 그림자였음을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진정한 유월절의 실체는 이제 곧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유월절의 실체가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될 때까지 먹지 않고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던 예수님은
말씀하신 바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셨을 때,
사형 집행인들이 십자가에서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자 마지막 자비로서 베푸는 몰약 탄 포도주조차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에 달리시고 불과 몇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 ‘목이 마르다’고 말씀하시고선
사람들이 해면에 적셔서 올려준 신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곧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께서 드시지 않겠다던 포도주를 드신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체념이었을까요?
극심한 갈증에 무릎 꿇은 의지박약이었던 것일까요?
아니지요.
그것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유월절이 이루어질 때까지 드시지 않겠다고 친히 선언하셨던 포도주를 드시고 ‘다 이루었다’ 외치신 것은
그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유월절이 이제야 완성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이야말로 진정한 유월절의 실체였습니다.
출애굽 때의 유월절은 십자가 사건의 예표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진정한 유월절입니다.
이전의 모든 유월절이, 그리고 이후의 모든 성찬식이 유일하게 연합해야 할 진정한 실체인 것입니다.
이로써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피를 연합된 이들의 심령에 새기는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언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우리 주님은 진정한 유월절의 실체인 십자가에 자신의 백성들을 연합시켜 주심으로써,
나의 공로와 순종으로 의와 생명을 얻어내는 나라가 아닌
예수의 순종과 공로로써 의와 생명을 얻게 되는,
새언약의 나라에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