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유월절 식사가 마무리에 접어들 때쯤
제자들 사이에서는 누가 크냐는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은 ‘또’라는 말로 앞 상황과 이어지는 상황으로서 이 다툼을 묘사합니다.
앞선 상황에서 제자들은 누가 스승을 팔려는 것인지, 우리 중에 배신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로 논쟁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 직책을 누가 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설전으로 전개되어 갔습니다.
그들 중 누가 배신자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수로라도 중요한 직위가 혹시 모를 배신자에게 맡겨지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이라고 판단된다면,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인물이라면
그 제자는 중요 직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속에서
제자들 모두는 자신들이 얼마나 충성되고 의롭고 유능한지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듯합니다.
누구는 국방부 장관, 누구는 행안부 장관, 누구는 갈리리 총독,
제자들은 각자 자신이 어떤 일을 맡아야 하는지 어느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지 설명하고 설득하며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냐’고 꾸중하시는 대신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긴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동시에 ‘이방인의 임금들과 집권자들이 행하는 식의 다스림과 너희의 다스림은 다를 것’이라며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상은 큰 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려 합니다.
약자가 큰 자를 섬겨야 합니다.
작은 자가 큰 자의 주머니를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상식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집권자들에겐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는 자비롭고 관대한 분’이라는 칭호가 뒤따릅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폭군일수록 그런 어용적 칭호를 더욱 많이 얻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가 큰 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합니다.
군림하고 싶어 합니다.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처럼 말로 일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의 뜻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처럼 자기 뜻과 생각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 같은 확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으면,
성을 내고 분을 냅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죄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이란, 섬김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이란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큰 자가 작은 자를 도와주고 지켜주고 기다려주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그래서 언제나 섬겨주심입니다.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채워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스림은 언제나 사랑의 섬김입니다.
그래서 큰 자가 약자를 지켜줍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도와주고 채워줍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게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섬겨줍니다.
먹여주고 챙겨주고 지켜주고 섬기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녀를 향한 진정한 다스림입니다.
다스림이 섬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로 오셨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와 섬기는 자 중에 앉아서 먹는 자가 커 보이겠지만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다툼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섬김에 대한 기록은 사복음서 중에서 오직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누가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사건 바로 직전에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상기시켜 기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 죽음이야말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긴 진정한 본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에도 다 담을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피조물을 위해 그것도 불순종하여 타락한 벌레 같은 죄인들을 위해,
사람이 되어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임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온 우주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크신 분이
가장 보잘것없고 하찮고 패악한 이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시고 섬겨주신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의 비뚤어진 욕심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인간관계를, 자녀를, 배우자를, 돈을,
사랑의 섬김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지배하려 할수록 군림하려 할수록 십자가와는 멀어집니다.
십자가의 길을 벗어남은 인생의 지옥을 맛보는 길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면,
십자가에 그 옛사람은 달아버리고,
우리는 사랑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섬겨주시고,
우리가 사랑으로 다스리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맡겨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