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마치신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향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가룟인 유다도 익히 잘 아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끌고 올 병사들을 기다리며
이제 곧 격발될 마지막 고난의 십자가 길을 맞이하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제자들과 돌 던질 거리만큼 떨어져 앉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선
이내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에 전념하셨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거리가 돌 던질 만큼의 거리였기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분의 떨리는 목소리와 기도의 내용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승이 기도하시는 모습과 그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듣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고취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십자가에 대해 가르치셨던 스승이,
지금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어 엎드려 기도하며,
죽을 만큼 괴로워 눈물 흘려 절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들려오는 기도의 내용 또한 제자들을 근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애원하시면서도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스승의 기도 소리는
제자들의 모골이 송연하게 했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불안함에 휩싸인 제자들은 그날 밤 슬픔 속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육신의 연약함을 결국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육신의 연약함을 이겨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 쉬울 리 없습니다.
하물며 예수께서 받으셔야 할 잔의 무게는 인간의 본성을 얼마나 거슬러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피조물이 당해야 할 죗값, 자기 백성이 져야 할 죗값의 총량을 모두 짊어지고,
우리가 당해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모두 감당하시려는 이 잔의 무게는
도무지 인간의 연약함으로는 받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버림받게 될,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버릴 지옥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선 죽임당할 수 없으시기에,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은 처음 오신 목적대로 연약한 인성으로써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망의 저주를 짊어지려 하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성자의 신성이 이 짐을 대신 져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이 길은 인성이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하여,
연약한 육체와의 싸움으로써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기도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긴 이 잔을 받으실 계획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왜 마지막 순간의 기도에서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하신 것일까?!
주가 담당하셔야 할 죗값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두려움으로 뱉은 그의 연약한 인성의 본심이었을까요?
그러니까 사실은 주님도 우리를 포기하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마음 같아선 피하고 싶지만, 아버지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니,
어쩔 수 없이 두 눈 한번 꼭 감고, 두려움을 이겨내 보려고 기도로써 용기를 끌어 올리시는 중이시었을까요?
예수님은 그런 의미에서 기도가 필요하셨을까?!
그러고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왜 기도가 필요하셨을까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모든 것들도 이미 알고 계시고,
또 원하신다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자 사람이신 그분이 기도하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기도는 정말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 튀어나온 그의 본심이었을까요?!
하지만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우리 주님의 기도는,
두려움 앞에 튀어나온 본심이 아니라,
사랑 앞에 튀어나온 진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율법에 순종할 수 없는 우리 대신 율법에 순종하려고 오셨습니다.
아무도 율법에서 약속한 의와 생명과 복을 얻지 못하고,
오직 죄로 인한 사망과 저주 아래에 매여 있을 때,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사망과 저주를 대신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순종 없음과 그래서 의로움 없음의 문제까지도 대신하러 오신 분이셨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 생명을 얻고 형통하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신 유일한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모든 가르침은 사실 제자들보고 행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명령은 사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순종하실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는 그분의 기도 역시 우리를 대신한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래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에 연합하여 닿게 할 때,
예수님의 기도대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그 잔을 우리에게서 옮겨 그의 아들에게 쏟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우리에게선 사망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토록 간절히 애원하셨던 그리스도의 기도 덕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주님의 기도에 우리의 기도가 닿게 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릴 위해 기도하시니 우리는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의 유일한, 그리고 완벽한 중보자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