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잠이 들어버린 제자들을 깨우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던 그때였습니다.
유월절 식사 도중 언제 자리를 이탈해 나갔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던 가룟 유다가 때맞춰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 그리고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과 그들의 사병들이 함께였습니다.
로마의 직접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 지역에서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적으로나마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산헤드린 공의회뿐이었기에,
그들은 눈엣가시 같은 예수를 체포하는 현장에 직접 동행했습니다.
로마법 아래에서 움직여야 하는 한계 때문에 체포 과정에 사상자가 발생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란이 발생할 경우 사상자 없이 진압하기 위하여 검으로 무장한 것 외에 몽치, 곧 곤봉으로도 무장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를 잡으러 온 사람들과 싸인을 맞춰놓은 상태였습니다.
입을 맞추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예수라고 약속해 놓았기에,
그는 예수를 잡으러 온 이들에게 예수를 특정하기 위하여 스승에게 입을 맞추어 인사를 합니다.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는 예수님의 지적대로
유다는 화평을 상징하는 입맞춤의 인사로써 자신의 비열함과 탐욕을 실현하고자하는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싸인으로 인해 어두운 밤에도 누가 예수인지 특정하게 된 무리들은 예수를 붙잡으려고 예수께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이때 제자들 중 하나가 나서서 칼을 휘둘러 그들을 저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칼부림에 대제사장의 종이 오른쪽 귀를 잘리고 말았습니다.
평행 본문인 요한복음을 보면 칼을 휘두른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칼에 오른쪽 귀를 베인 사람의 이름도 나옵니다.
베드로가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말고라는 대제사장의 종이 오른쪽 귀를 잘렸습니다.
베드로는 이 순간 어떻게 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제자들에게 검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서라도 검을 사라고 가르치셨던 예수님입니다.
말고의 귀를 자른 것은 검을 준비하라는 예수님의 눈앞에 제자들이 보여드렸던 두 자루의 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날 밤에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잡으러 오는 사람들을 힘으로 대항하고 물리치기 위해서 검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두 자루의 검을 보고 ‘족하다’고 말씀하시진 않았을 겁니다.
잡으러 온 사람들을 물리치려면,
그렇게 민란의 도화선이 되어 물리적인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쟁취해 내려면
검 두 자루로는 어림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검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제 곧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불법자,
즉 율법 없는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엔 제자들이 아무것 없이 어느 곳을 가더라도 환대와 호의를 받았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환대와 호의를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전대와 배낭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검을 준비하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제자들의 앞에 놓인 것은 환대와 호의가 아니라 멸시와 미움과 천대와 적대뿐입니다.
예수께서 검을 준비하라고 하신 말씀은 그렇게 발생할 분쟁과 싸움과 다툼을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서 싸워내라는 요구입니다.
겉옷을 팔아서라고 검을 사야 한다는 말씀은 다가올 칠흑 같은 밤의 시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이불처럼 겉옷을 덮고 잠자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둠의 시간은 잠들지 않고 일어나 낮에 속한 자처럼 싸워나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물리적인 대항을 위한 무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력행사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한다며, 검을 검집에 넣게 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여기까지 허락하라’ 말씀하시곤
오른쪽 귓부리가 잘린 말고의 귀를 고쳐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치유사역은 귀를 고쳐주심입니다.
율법에서 정결하게 하기 위해선 대속제물의 피를 오른쪽 귀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 그리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라야 했습니다.
그러니 오른쪽 귀가 잘린 이 사람은 앞으로 정결해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귀를 고쳐주십니다.
정결해질 수 없게 된 이를 고쳐 정결해질 수 있는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해오셨던 사역의 이유이고,
십자가를 지고 감당하실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이로써 제자들이 해야 할 싸움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제 이 어두워져가는 밤과 같은 시기에 제자들이 해야 할 싸움이란,
그 귀를 고침 받은 이들의 그 귓부리에 거룩한 하나님 아들의 피가 닿게 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들에게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이 들려지게 하는 싸움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피를 흘리는 싸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흘림을 그의 귓가에 닿게 하여 사람을 살리는 싸움이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로 온 줄로 아느냐 평강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우게 하려고 왔다’는 말씀은
그래서 얼굴 붉히고 의절하고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부류의 싸움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살리는 싸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무엇으로 싸워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과 방법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