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바의 집 지하 구금시설에 갇혀 있던 예수님은 새벽이 밝아오자
그를 공회로 끌고 갈 준비를 하려는 성전경비대에 의해 마당으로 끌어올려졌습니다.
이미 세 번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한 베드로는 예수와 눈빛을 마주치자,
울음을 참지 못하고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예수를 지키는 이들은 예수를 모욕하기 위해 “선지자 노릇하라”고 약을 올리며 “누가 때렸는지 맞혀보라” 고 예수의 뺨을 때렸습니다.
날이 밝자 예수님은 산헤드린 공회가 열리는 성전 북쪽벽 ‘다듬은 돌 회관’이란 곳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산헤드린 회원들이 날이 밝기까지 기다렸던 이유는
산헤드린의 공적 재판은 공개 재판이 원칙이기 때문에 밤 동안에는 열릴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재판이 시작되자 예수님은 한마디 대꾸 없이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산헤드린의 공식 재판 동안 이대로 예수가 계속 침묵한다면 그들은 예수를 로마에 기소할 꼬투리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은 답답한 마음에 예수께 직접 질문을 합니다.
“네가 그리스도면 우리에게 말하라.”
그러나 사실 이 재판은 시작도 전부터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재판이었습니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밤새 가야바의 집에서 토론을 거쳐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로서, 로마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왔다’는 대답을 예수께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눈엣가시 같은 예수를 로마에 기소하여 사형을 요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이 이토록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이유는
첫째로, 예수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으시고 성전 세겔로 환전해 주는 환전상을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안나스와 사두개인들에게 환전 수수료와 장사 자릿값은 매우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었는데
예수가 망쳐놓은 탓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공개적으로 질타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기준은 하나님이어야 했지만,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율법을 왜곡하고, 스스로 거룩한 척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속에는 악독한 것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확장될수록 그들의 종교적 입지는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예수를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질문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임을,
어떤 논리적 문제 제기와 질문에도 귀를 닫아버릴 것임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번에도 침묵하실 수 있었습니다.
침묵하셔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예수에게 꼬투리를 잡지 못하고 로마에 넘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와 태도를 모두 아시면서도 기어코 입을 열어 답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예수님의 답변은 ‘네가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말하라’는 그들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면서,
동시에 며칠 전 그들과 논쟁하던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던지셨던 질문,
그러나 그들이 답하지 못하고 회피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며칠 전 예수께서 성전의 장사꾼들과 환전상을 내쫓으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논쟁하시면서 예수님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첫 번째 주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두 번째 주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성경이 진리라고 한다면 다윗은 지금 여호와 하나님 외에 또 다른 한 분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유일신 사상 외에 삼위일체에 대해선 꿈조차 꾸어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 논쟁 이후 며칠을 고민해 보아도 서기관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대체 하나님께 아들이라도 있다는 말인지 그들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답변은 또다시 그때의 논쟁을 불러오기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그 두 번째 주인의 자리에 앉으시리라 말씀하셨으니,
이 말은 예수께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자신을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에 산헤드린의 율법 학자들은 모두 발끈하며 일어나
‘그 말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말이냐’며 소리를 지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질문은 그들이 예수님과의 논쟁에 대해
이제는 두 번째 ‘주’가 누구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응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짚어주시기 위해 ‘너희가 말한 그가 나다’하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질문을 모르는 척 회피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이 재판을,
그들이 유대교에서 그동안 믿어왔던 하나님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의 기로에
산헤드린 회원들을 세우는 재판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뜻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과오와 몰이해와 잘못을 인정하고 버리고 돌이키는 일이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믿고 싶은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성령을 통해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