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헤롯에게서부터 빌라도의 관정으로 돌아오자, 빌라도는 백성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예수가 반란을 꾸밀 계획으로 백성들을 미혹했다고 하니 백성들을 직접 불러다가 재판 과정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은 아침 일과를 시작하며 간밤에 있었던 예수 체포 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참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어제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으니 그 인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만약 공정한 재판 과정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훗날 예수의 추종자들이 로마에 고발할 경우 황제 앞에 송환되어 재판 과정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감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에게 사형 대신 태형을 선고하려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가 밉보인 문제라면 태형으로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를 추종하던 백성들까지 한자리에 모여있으니 이 정도면 타협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빌라도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백성들은 하루아침에 예수에게서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아니, 하루가 지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야 지난밤 일어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을 테니,
예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마음을 돌린 것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선 이유는
예수가 보여준 메시야로서의 행보가 그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실패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말 메시야라면 이렇게 무력하게 잡혀서 재판받고 있을 리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는 실패로 끝난 것입니다.
지난 며칠간 헛된 희망과 소망으로 행복했을 백성들은
파괴되어 버린 행복의 크기만큼, 실망해 버린 기대의 크기만큼 분노와 증오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속인 희대의 사기꾼 예수에 대한 혐오는 그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는 요구로 폭발했습니다.

십자가에 예수를 달아달라는 백성들의 요구에 빌라도는 ‘바라바’라는 범죄자를 언급합니다.
반란의 우려 혐의로 기소된 예수와, 실제로 살인과 반란을 일으킨 범죄자 바라바 중
누구를 유월절 특사로 석방해 줄지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바라바는 실제로 반란을 일으킨 범죄자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예수를 석방해야 하는 법입니다.
예수를 고발한 이들이 정말 반란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그를 고발한 것이었다면,
결코 바라바와 같은 실제 범죄자를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백성들은 하나같이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의 요구는 오로지 혐오와 증오와 분노뿐이었습니다.
분명히 로마법상으로 그리고 율법상으로도 예수께 그 어떤 죄목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무조건 ‘죽여달라’고 소리쳐 외칩니다.

이들의 요구는 법의 목적과 원칙, 실질적이고 형식적인 모든 부분을 무시하는 초법적 행위 요구입니다.
그러나 법이란, 하나님 권위의 연장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이해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관점입니다.
심지어 율법은 하나님이 직접 수여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준법 준수와 헌법 수호는 다수결로 협의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우리 모두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것으로 여기고 그냥 그렇게 해달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협의인 것처럼,
법 위에 자신들의 결정이 있는 것처럼 굽니다.
하지만 법 위에서 행동하려는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며,
법을 수여하신 하나님 위에서 행동하려는 처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행할 수 없는 일을 행하면서 자신들의 증오와 혐오와 분노를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고,
하나님의 통치 역시 부정당하고 버려졌으며,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야 말았습니다.

이들의 미움과 증오와 혐오와 분노를 뒤집어쓴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러나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분명 이끌어가십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한 그리스도의 열심은 결국 바라바를 석방시켰습니다.
바라바의 모든 죄목은 그리스도께서 뒤집어쓰셨고 바라바는 죄 없는 사람이 되어 풀려났습니다.
바라바의 이름 뜻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아들 예수가 버림당함으로 ‘아버지의 아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 바라바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형제에게 라가(바보)라고 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하였는데,
혐오와 증오와 미움으로 동기를 삼고 목적으로 삼고 살던 우리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고 그 위에 서서 스스로를 왕으로 여기는 반역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도둑질하여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살아가던 위법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범죄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버림당함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율법 아래 살지 않고 그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던 죄인들을 사랑의 법 아래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예수를 닮아가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일은 미움받는 일이 아니라 미움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사랑이 동기와 목적이 되어 정의를 이루어내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