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라는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개츠비는 강 너머에서 밤마다 깜빡이는 녹색 불빛을 인생의 목적이요 꿈으로 두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오는 녹색 불빛은 개츠비에게 있어 도달해야 할 꿈이었습니다.
녹색 불빛은 그가 부자가 되어야 할 동기와 원동력과 목표가 되어주었으나, 그 등불에 가까이 다가섰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파멸을 맞습니다.
개츠비는 사랑하는 불륜녀의 뺑소니를 가려주었다가 피해자의 가족에게 총격을 당해 사망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사랑하던 여인은 그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않고 남편과 여행을 갑니다.
위대하다는 제목의 수식어는 개츠비의 결말과 대비되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오직 그 꿈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인생으로 변모하여 녹색 불빛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헛된 것을 꿈꾸는 인생의 말로는 비극이지요.
인생에, 헛되게 바라는 녹색 등불이 어디 사랑뿐인가요?
세상엔 수많은 헛된 꿈들이 가득합니다.
그 꿈들은 에메랄드빛으로 영롱하게 사람의 눈앞에 빛나고 있습니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달려왔는데, 만약 그 꿈이 결국 실패하게 된다면, 좌절된다면, 그 꿈을 위해 준비하며 달려왔던 시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만약 꿈이 그 사람의 전부였다면, 정말 인생의 목적이었다면…
그 꿈이 무너질 때 꿈과 함께 지난 세월의 노력과 준비도 모두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한 사람의 존재 가치가 그 꿈의 실현과 목표 달성 여부에 달려있다면,
그 꿈이 그의 삶에서 떨어져 나갈 때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진학에, 진로에, 성공과 사회적 위치 등에 인생의 가치가 달려있다면 그것만큼 비참하고 허무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이 직업을 얻게 되는 것이, 이 일의 성공 여부에 내 인생이 걸려있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곤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이 일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그래서 그 목적이 좌절되고 꿈이 실패하게 되면, 자신의 인생도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만약 개인적인 목표와 목적과 꿈의 실현이 인생의 목적이고 진정한 가치라고 한다면…
꿈은 인생을 도와주고 버티게 해주는 길잡이가 아닌 결국 배신하여 인생을 함께 추락시키고 말 헛되고 헛된 일 일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신하지 않는 대상이 꿈이 되어야 합니다.
헛되지 않은 것이 우리의 꿈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이 우리의 꿈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결코 박리시킬 수 없는 진리가 우리의 꿈이어야 합니다.
그 꿈이 목적일 때, 그 꿈을 위한 다른 일들은 그저 수단이 되고, 그런 수단들은 얼마든지 바뀌어도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꿈이실 때, 인생의 모든 도전에 실패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단이 바뀌는 과정일 뿐입니다.
목적이 변함이 없기에, 꿈이 배신하지 않고 신실하기 때문에, 내 인생의 다른 목표들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 됩니다.
꿈이 배신하지 않게 하려면, 배신하지 않을 대상이 꿈이 되어야 합니다.
부동산은 우리의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직장은 우리의 꿈이 될 수 없습니다. 명예와 인기는 우리의 꿈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꿈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