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게 내린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제자들의 마음에는 절망이라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스승의 죽음은 그들의 꿈과 소망을 산산조각 내버린 재앙이었습니다.
엠마오에서 다급히 돌아온 제자 둘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며 가뜩이나 심란한 그들의 마음을 더욱 혼란케 하던 그때,
갑자기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인사를 합니다.
“샬롬!”
부활하신 예수님이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 앞에 평화의 인사를 건네며 당당히 서 계셨습니다.
기절초풍할 만큼 깜짝 놀란 제자들은 영혼을 본 줄 알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뼈를 만져보라고 제안하시며
자신이 단순한 영혼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임을 증명하려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예수님의 손과 발을 만져보았다는 말이 없는 것은
그만큼 제자들의 두려움과 의심이 깊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운 생선을 잡수시며,
그들 앞에 서 있는 ‘부활의 몸’은 단순한 영적 현상이 아닌, 살과 뼈를 가진 참된 육체의 부활임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만남은 단지 경이로운 체험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그 이름으로 선포될 죄 사함을 위한 회개가
모두 성경에 예언된 일이었음을 다시금 가르쳐 주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가르치셨던 것과 별다른 것을 가르치신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제서야 제자들의 눈과 마음에 말씀이 깨달아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단순히 한 개인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구약 전체에 걸쳐 약속된 하나님 구속 계획의 정점이자 완성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희생은 창조 세계 전체가 의지하고 기다리던 우주적 사건입니다.
이후 예수님은 베다니 앞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축복하신 후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주님은 베다니 앞에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그 길을 제자들과 거꾸로 걸어 오르시며,
왕으로 입성하셨던 그 길을 이별의 장소로 택하셨습니다.
무화과 열매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다니에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은 이후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열매로 맺어지게 될 제자들과 작별을 고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밤의 이별은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 돌아오실지 알려주시지 않은 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훌쩍 떠나심이야 말로 사실 누가복음 이야기의 절정이자 결론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물리적 부재의 시대를 시작하는 신호탄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언제나 제자들의 해결사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의심할 때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이제 떠나신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심각한 위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떠나심에 기약 없음을 통하여,
누가복음의 결론에 이르는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재하신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은 주님의 떠나심 앞에서 분리불안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약속해 주신 “위로부터 오는 능력”, 성령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물리적 부재를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진리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시고 눈을 밝혀주십니다.
성령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성경의 기억을 단순한 지식으로 남겨놓는 게 아니라 경험이 되고 체험이 되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성령의 조명을 통해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그분의 인격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탄식하며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의지, 감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반응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를 실제 삶으로 살아낼 수 있게 하는,
예수님이 부재하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불러오는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위로부터 입혀 주시는 능력’을 받아,
기쁨과 담대함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님의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살펴보았던 누가복음이 이제 마지막 결론을 맞았습니다.
누가복음의 마지막은 예수님이 부재한 시기를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어둠과 두려움,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부활의 확신과 성령의 능력을 통해 싸우고, 안식하며, 사랑하고, 두려움 없이 살 것인가?
우리가 마음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에게도 능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부재하신 이 시대를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베다니 앞에서 떠나신 예수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의 떠나심은 성령을 통해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세상에서 그분의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의 오늘을 그 영광스러운 여정의 한가운데 서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