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항해 중에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납니다.
폭풍은 때론 건강의 위기, 관계의 단절, 재정적 어려움, 또는 깊은 외로움과 불안이라는 형태로도 찾아옵니다.
이런 폭풍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에 사로잡히고,
곧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원인과 책임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자책하거나, 타인을 탓하거나, 혹은 사회와 운명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겨누게 되곤합니다.
이것은 범죄 한 아담이 하와를, 하와가 뱀을 탓했던 것처럼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발동하기 때문입니다.
폭풍을 만나면 인간의 연약한 죄성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요나서 1장은 우리에게 이러한 폭풍 속에서 폭로되는 죄악된 본성과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목적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요나의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폭풍 속에서도 그가 보인 완고함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자처했지만,
그의 행동은 그의 고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을 뿐 아니라,
폭풍 한가운데서도 무감각하게 잠들어 있었고,
이방인들의 기도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스스로를 바다에 던지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는 얼핏보기에 그의 책임 있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옳다”는 교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께 저항하는 극단적 행위였습니다.
그는 니느웨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죽어도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중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신뢰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선하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요나는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릇된 정당성에 사로잡혀 니느웨인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죄인들이니 죽어 마땅하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요나와 대조적으로,
이방인 선원들은 인간적인 양심으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을 깊이 주저하며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습니다.
선지자보다 이방인들이 오히려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착각에 빠지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나 양심조차 뒤로하고 대의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하게 됩니다.
이방인 선원들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어떻게든 요나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연약한 죄인이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도덕적으로 선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죄 아래 무력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역설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배 위에 온전히 선한 인물은 아무도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만은 선하셨습니다.
교만으로 불순종한 요나에게도, 연약한 죄인들인 이방인 선원들에게도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된 행위마저 사용하셔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마자 폭풍이 즉시 그쳤습니다.
한 사람의 던져짐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거두어진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것을 예표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불순종과 방해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막아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완고한 불순종과 교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어떤 실패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후회, 심지어 불순종조차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도 헛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모든 것이 유익이 됩니다.
그렇기에 인생에는 돌아가는 길이란 없습니다.
간 만큼이 유익입니다.
A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B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행한다면, 하는 만큼 유익이 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본문은 요나의 불순종보다 선원들이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변화되는 과정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폭풍을 두려워했고,
점차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다가,
마침내 바다가 잠잠해지자 여호와 하나님 자체를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폭풍과 삶의 고난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들을 자신을 경외하는 예배자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닥치는 폭풍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누구 탓인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어떤 경우에도 그분의 선하신 계획을 반드시 이루어가시는 분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폭풍을 만날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폭풍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 우리를 예배자로 빚어가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은 큰 폭풍으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요나를 새롭게 하셨듯이,
우리 삶의 폭풍을 통해서도 우리를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로 빚어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