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장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는 3500년 전 이집트 땅에서 벌어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합니다.
야곱의 70명 가족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간 후,
그들은 350년 동안 평안하게 번성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셈족 계열인 힉소스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기에,
같은 셈족인 히브리인들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이었지만 상황은 이내 급변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 지역의 원래 거주자들인 함족 계열이 힉소스 왕조를 몰아내고 이집트의 18대 왕조를 세운 것입니다.
새로 들어선 왕조의 새로운 파라오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표현은 단순히 요셉이란 인물에 대한 정보의 무지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와 공헌을 의도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새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을 두려워하며 “지혜롭게” 대처하겠다고 했지만,
그 지혜란 것은 바로 무자비한 압제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목축만 하던 그들이 강제로 건축에 동원되고, 국고성 건설, 벽돌 굽기, 농사일 등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게 된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파라오가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린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투력은 감소시키면서도 노동력은 거저 얻으려는 일석이조의 계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과 번성의 약속을 막으려는, 그리하여 구속사의 흐름을 훼방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방해공작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집트의 압도적인 폭력과 폭정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항할 수단 없이 나약하고 무력하기만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과 잔혹한 압제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가속화하여 “더욱” 번성하게 만든 것 입니다.
파라오의 “지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완전히 무력했습니다.
애굽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이자 축복의 언약을
첫사람 아담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언약은 창세기의 시대를 관통하여 애굽에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개의치않고 번성하는 출애굽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언약이 어떤 방해와 훼방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후 80년간이나 고통받도록 허용하신 걸까요?
고난 없이 편안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실 수는 없으신 것일까요?
하지만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언약 성취는 언제나 고난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시작 전 40일 금식하셨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고난받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전에 노예생활을 겪고, 가나안 입성 전에 40년 광야생활을 한 것은,
하나님께선 고난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특별한 효과가 있습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소망을 거두고 천국을 소망하게 만듭니다.
350년 동안 이집트에서 편안하게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80년간의 노예생활을 통해 그들은 이집트에 대한 모든 아쉬움과 정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약속의 땅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은 이처럼 부족한 것 전혀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하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게 만듭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유리하던 환경이 사라진 후에도, 폭압의 환란 속에서도 계속하여 번성한다는 것은,
그동안 그들이 누리던 복이 좋은 환경이나 유리한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성취될 언약을 향한 흔들리지는 믿음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이든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심이 증명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간 보여온 행복과 기쁨과 만족이, 그간 우리가 누리던 형통함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때문임을, 고난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세상에 증명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속에서 사는 것은 일제시대 때만 힘들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현시대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은 실망하고 좌절할 일의 연속입니다.
정직하게 돈 벌기가 어렵고,
주일을 지키며 취직하기가 쉽지 않으며,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면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가 벅찰 때도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지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란의 순간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성취는 고난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허용하심으로써 당신의 능력을 더욱 크게 드러내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신실하신 약속을 붙들고
다가올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난 속에서도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무엇인지를 우리 삶에 보여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