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 시절에는 전혀 주목해 볼 일이 없었겠지만,
모세가 양치기로 살면서 매일 보게 되는 것은 끝없는 광야에 지천으로 깔린 떨기나무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평범했던 떨기나무가 달라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광야의 지열로 인해 불이 붙은 한 떨기나무가 오랜 시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놀란 것은 떨기나무가 자연발화한 현상 때문이 아니라,
앙상한 가시덤불의 떨기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잿더미로 타버려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불꽃이 타오르는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이 다 타버린 것처럼 느끼던 80세의 모세에게,
타버리지 않는 떨기나무는 신기함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모세는 더욱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모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죄인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서면 소멸하는 불길 앞에 진멸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신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신을 벗는 것’은 부정한 자가 되었다는 비난과 부끄러움의 표현입니다.
율법에서 ‘기업 무를 자’가 형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의 신발을 벗기고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불렀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의무란, 형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구원해주어야 할 의무를 말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땅을 팔면 대신 구매하여 되찾아주고,
종이 되면 사서 자유인으로 구원해주어야 했습니다.
형제가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계대결혼으로 대신 아들을 낳아주어야 했습니다.
이는 재산상 손해를 각오하는 희생적 구원의 의무였습니다.
율법은 이 구원의 의무를 ‘기업 무름’이라 하고,
구원자를 ‘고엘’이라 부릅니다.
누군가 이 고엘의 의무를 거부하면, 신을 벗기고 침을 뱉는 수치스러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신발을 벗는 것이 수치스러운 이유는,
부정한 것에 닿는 것마다 부정해진다는 율법의 정결법 원리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저주받은 땅을 맨발로 밟는 것은 부정해지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이 땅에 묻히면 흙으로 돌아가기에,
시체를 만지는 자마다 부정해지듯, 맨발로 땅을 밟는 자 역시 부정해집니다.
따라서 고엘의 의무를 거부하여 신을 벗은 자는 맨발로 저주받은 땅을 밟아 부정한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 명령하셨을까요?
형제를 구원하지 못한 모세를 심판하시려는 것일까요?
부정한 모든 것을 진멸하시는 하나님의 불꽃으로 모세를 사르려 하시는 것일까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은 모세는 부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룩해집니다.
그가 밟게 될 땅은 부정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로 거룩해진 땅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것에 닿으면 부정해지지만, 거룩한 성전 기물에 닿으면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것이 정결법의 원리입니다.
열두 해 혈루병으로 앓던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나음을 입고 정결해졌듯,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고 거룩해진 것입니다.
모세는 젊은 날 형제들을 구원하려다 거절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평생 형제를 구원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온 모세는
드디어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으며 형제를 구원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벗게 됩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구원하지 못한 모세를 책망하거나 심판하시기 위해 신발을 벗으라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무거운 멍에를 내려놓고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메도록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 명령하신 것은,
이제 형제들을 구원할 의무를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지시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고엘이 되시겠다는, 하나님이 모세를 대신하여 구원자가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구원자가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은 모세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신을 벗고 하나님의 거룩한 땅을 밟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대신 고엘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을 벗으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뜻대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 우릴 짓눌러 무너뜨리려 할 때,
우리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신을 벗으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 책임과 의무와 좌절을 벗기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소멸하시는 불로 진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 불꽃으로 타오르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말라비틀어진 광야의 떨기나무 같았던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한 이후 불타오르는 삶을 살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은 사람은, 타오르지만 타버리지 않는 떨기나무처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꺼지지 않는 열정의 불꽃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번아웃 되어 재가 되어버린 심령에도 다시 불꽃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오늘 나의 모든 책임을 대신 지시며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 앞에,
나의 소유권과 자존심과 내 권리를 벗어드리면,
주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열정이 되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