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부족하거나 모자람 없이 완벽하고 확실한 계획입니다.
세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깊은 내면에서 결정하신 작정이 실현된다는 것은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형편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에 대한 성경적 증거로써 하나님도 후회하신 적이 있다는 성경본문을 언급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그런 의심대로,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본문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6장에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셨고,
사무엘상 15장에서는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요나서 3장에서는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하자 심판하시고자 하시던 뜻을 돌이키셨고,
이사야 38장에서는 히스기야의 죽음을 선포하셨으나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해주시기를 기도할 때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도 뜻을 돌이키신다는 이러한 주장은 죄성이 많은 우리에게 너무도 반가운 소식처럼 들립니다.
기도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돌이켜 나의 계획대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을 수행하시고서는 후회하셨다니?!
충분히 충격적이고 도전적인 의심입니다.
이 주장이 의미하는 바대로라면 하나님의 예정이란 결국 작정이 아닌 예지를 말합니다. 
벌어진 일들의 인과관계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 인과율을 예상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벌어질 상황에 대해서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그 상황에 대응만 할 뿐,
그래서 그 상황 자체를 안타까워한다는 뜻이죠.
예를 들면 일기예보와 같습니다.
내일의 날씨는 미래에 벌어질 일이지만 관측을 통해 우리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다. 
내일 비가 올 것인지 맑을 것인지는 통제할 수 없지만, 우산을 들고 나갈 것인지 아닌지로 대응할 수는 있듯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가 바로 그런 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신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로 인과율을 계산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도 아니요, 완전하신 분도 아니요, 신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수정해야 할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일하시고 불변하시며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9절에서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다”고 말하며,
민수기 23장 19절에서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거짓과 후회가 없으시고 어찌 그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후회하심’이란,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한 수준의 표현으로써 우리의 역량에 맞추어 묘사한 것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눈’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고 하시며,
하나님에게 ‘팔’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를 ‘오른손으로 도우시겠다’고 표현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번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지만,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것은 오히려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가려져 있던 그의 선한 계획의 진짜 의도와 은혜가 드러나는 표현인 것입니다.
안타까운 그 마음으로, 그 일을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그래서 준비하신 감춰놓은 구원의 작정이 따로 있으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것을 구속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선하신 작정 안에서 섭리하시며 인생을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심에 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이루어짐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