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호렙산에서 “백성들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가 우려한 것은 인간의 완고한 불신앙이었습니다.
430년간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갑자기 나타나셨다며 “내가 그분이 보내신 사람이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모세에게는 인간의 불신앙을 뛰어넘을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믿음 없는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선지자의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사실 이런 완고한 불신앙의 문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내부적으로 또한 외부적으로도 믿음 없음의 문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 반드시 넘어서야할 관문입니다.
그럴때면 우리는 “하나님, 보여주세요. 그럼 믿겠습니다.” 하고 기도하게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응답은 늘 우리의 기대와는 다릅니다.
왜 하나님은 압도적인 스케일의 기적으로 죄인들의 이성을 굴복시키지 않으시는 걸까요?
원하신다면 가장 놀라운 기적들로 놀라우신 하나님을 증명하고도 남을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세가지 표적들은 온 우주에 다 담을 수 없는 광대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다 표현하기엔 놀랍게도 소박했습니다.
훗날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흉내낼만큼 그리 놀라운 이적은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리거나 피라미드를 무너뜨렸다면 모두가 엎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 없음을 위하여 모세에게 세가지 표적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가장 기묘한 표현을 만납니다.
“그들이 이 표적의 표징을 받고 믿으리라.”
이때 표징을 받는다고 번역된 히브리어의 원래 뜻은 ‘소리를 듣고’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표적의 표징’이란 ‘표적의 소리’ 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보고’ 믿게된다고 하시는게 아니라 ‘듣고’ 믿게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소리’란 메시지를 뜻합니다.
표적이 전하는 이야기, 그 상징이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표적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놀래켜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표적을 통하여 반드시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표적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하나님은 왜 하필 지팡이로 뱀을 만드셨을까요?
뱀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하쉬’는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타락시킨 바로 그 뱀과 같은 단어입니다.
출애굽기에선 오직 4장에서만, 그리고 창세기에선 3장에서만 단어의 거의 모든 용례가 모여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꼬리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뱀의 꼬리를 잡는다는 것은 완전한 제압을 의미합니다.
머리를 잡는 것은 뱀을 산 채로 잡을 때나 하는 일이고, 완전히 제압하려면 꼬리를 잡아 원심력으로 돌려 땅에 내리쳐야 합니다.
나무에 매달린 선악과와 함께 등장해 죽음을 가져온 그 뱀이, 이제는 나무 지팡이로 변하여 모세의 손에 들렸습니다.
이 표적의 소리는 분명합니다.
“내가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제압하겠다!”

두 번째 표적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까?
“눈같이 흰 나병”이라는 표현은 모세오경에서 단 두 번만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4장 본문과 민수기 12장에서 미리암이 나병에 걸렸을 때입니다.
그때 모세가 중보 기도하자 미리암이 나았습니다.
이 표적은 중보자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표적의 소리는 명확합니다.
“내가 너를 죄에서 회복시켰다!”

세 번째 표적의 소리가 가장 충격적입니다.
앞의 두 표적과 달리 이것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물이 피가 되는 것으로 끝입니다.
왜 이 표적의 소리가 믿음 없는 이들을 향한 궁극적인 표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요?
비밀은 “마른 땅”이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 단어가 집중적으로 사용된 곳은 홍해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으로 건넜지만,
그들의 옛 주인인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을 쫒아 갈라진 홍해의 마른 땅으로 따라 들어가다가 그곳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흘 길(홍해) 가서 제사(히브리어로 ‘살육’)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이 표적이 ‘믿음 없음’에 대한 궁극적인 외침인 이유는
옛주인을 죽이시고 돌이킬수 없는 존재로 만드시는 비가역적인 구원 때문입니다.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죽어 이스라엘이 영원히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신 것처럼,
인간의 죄악된 본성의 불신앙도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구원 앞에 처형당하고 말것입니다.
이로써 구원받은 백성들 중 그 누구도 이전에 죄악과 사망에 종 노릇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비가역적이고 불가항력적인 구원의 은혜와 사랑은 이미 구원받기로 작정한 백성들 안에서 역사합니다.
성령은 이 복음의 목소리를 우리의 영혼에 닿게하여,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믿음 없음을 모두 십자가에 달아 죽여버리실 겁니다.
그렇기에 성령은 기적을 구하고, 징조를 찾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 애원하는 심령마다,
우리에게 십자가를 향한 표적의 목소리들을, 계시의 말씀들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보고 놀라는 것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나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을 향한 표적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믿음이 없어 고민하는 우리에게 비가역적 구원과 불가항력적 은혜의 목소리를 들려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