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번에는 나오미가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밭을 기웃거려봤자 소득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울 수도 없을 것이고, 이방인으로서의 대우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보리밭에서 일하는 소녀들에게 미리 귀띔을 해주어 룻이 최대한 많은 곡식을 풍족하게 걷을 수 있게 해줄 작정이었기 때문에
룻이 다른 밭에 가는 것은 시간 낭비요 손해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룻에게 헤세드를 베풀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나오미도 나오미 나름의 생각이 있었기에 룻에게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룻에게 보아스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리고 룻이 들고 온 한 에바의 보리를 보았을 때,
나오미는 룻의 미래를 향한 한 줄기 희망을 보았습니다.
한 에바면 여자 둘이서 한 달도 먹을 수 있는 양의 곡식입니다.
룻 혼자 들고 오기에도 벅찼을 양입니다.
보아스는 분명 룻 몰래 도와주려 한 것이었을 테지만 한 에바나 되는 곡식을 주워온다는 것은 보아스의 편애에 가까운 배려가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어쩌면 밭의 주인도 그렇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보아스의 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토록 보아스가 룻과 나오미의 생계를 신경 써준다는 것은 가난한 형제의 생계에 대한 책임감이 보아스에게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오미는 보아스를 ‘고엘’의 후보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 날 이전까진 나오미는 보아스를 고엘의 후보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항렬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높은 항렬을 가졌었기에 쉽게 후보로 상상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형제의 생계에 책임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보아스의 모습을 보자
나오미는 보아스를 고엘이 되어줄 사람으로 기대하며 희망을 겁니다.
그래서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다른 남자들도 만나지 말고, 오직 보아스의 눈앞에만 머물라는 뜻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잘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다른 밭을 가지 말라고 했건 간에, 보아스의 밭에 있으면 풍족함이 있습니다.
양식도 가정도 보아스는 풍족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밭을 기웃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애초에 나오미의 가정이 이렇게 풍족한 땅의 시절을 살았다면 다른 나라의 땅을 기웃거리지도 않았겠지요.
다른 땅으로 가지 말라고 한들,
수익이 없는데, 굶고 있는데, 붙잡기만 하면 방법이 되겠습니까?!
줍는 게 없으면, 굶고 있으면, 무엇이라도 먹을 것을 찾아 밖이라도 기웃거려야 하는 법입니다.
교회에 빵이 없으면 성도는 밖에서 먹을 것을 찾아 기웃거리게 됩니다.
주식에서, 부동산에서, 애인에게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굶어있는 텅 빈 영혼을 채워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선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만족이 되십니다.
다른 밭으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의 밭은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밭을 기웃거려 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다른 밭이 얼마나 허망한지, 얼마나 초라한지, 얼마나 배고픈지…
문제는 돌아올 기력도 남아있지 않거나, 이미 기아 상태가 되어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주저앉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마라.
이곳에 머물러라.
그때 풍족한 은혜가 우리에게 예비된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