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타고난 강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인물. 아브라함이나 모세처럼, 다윗도 그렇게 위대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편 27편의 다윗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담대함은 결코 타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담대함을 ‘훈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신앙 여정은 아주 작은 순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양치기 시절, 들판 한가운데서 혼자 양들을 지켰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하면서 그에게 맡겨진 이 작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자처럼, 백성들을 그의 양처럼 지켜주셨음을 묵상하며
다윗도 자신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때로는 양 무리를 노리는 사자가 나타났고, 곰이 덤벼들었습니다.
사람이 사자와 곰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사자와 곰 앞에서 양 떼를 두고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돌멩이와 막대기로 맹수들과 싸워 양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로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얼굴빛이 무엇인지를 순간순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봐주심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승리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비춰주시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이 경험이 다윗에게 쌓여 전쟁터의 골리앗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담대함이 되었습니다.
전쟁터의 모두가 다윗을 걱정했지만 다윗을 걱정하지 않는 이는 오직 다윗 자신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짐승들과의 싸움을 통해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내 힘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시고 나를 봐주시는 하나님의 얼굴빛 때문이었다는 것을.
시편 27편에서 다윗은 원수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원수들이 많았습니다.
얼마나 많았는지 다윗은 그들을 군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말합니다.
“내 마음이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는 다윗의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다윗의 결정입니다, 각오입니다.
다윗이 군대처럼 수많은 원수들 앞에서 이렇게 확신 있게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이 이미 체험했던 승리의 경험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하나같이 다윗을 모함하고 이간질하고 중상모략하여 다윗을 의도적으로 고립시킨 후
어린양에게 달려드는 짐승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살을 물어뜯으려는 짐슴처럼 달려드는 원수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자빠지고 쓰러졌습니다.
사자의 이빨 앞에서, 곰의 발톱 앞에서, 다윗이 경험했었던 하나님의 얼굴빛이 언제나 원수들을 쓰러뜨리고 다윗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그 하나님의 얼굴빛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봐주시면, 그 얼굴을 다윗에게 비춰주시면, 지금의 원수들도 결국 같은 운명일 것입니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찾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것이 그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순간에 믿음의 용사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먼저 사명과 소명에 충성을 다하는 삶의 작은 싸움에서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말미암은 승리를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얼굴빛을 아는 기쁨과 즐거움의 경험으로 이후 닥쳐올 전쟁을 이겨낼 힘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완벽한 승리의 감격과 기쁨의 경험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원수는 쓰러졌습니다.
사망이 짐승처럼 우리 주 예수의 살을 삼켜 죽음이 이겼다고 생각했던 그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그 빛이 이제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고백은 다윗의 고백과 동일한 것입니다.
“나는 해결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기다림은 도망이 아닙니다.
시편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군사용어로 말하면 Stand by입니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을지라도, 준비된 사람의 자세입니다.
불안해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이미 승리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그 얼굴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볼 때,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장관 어깨 뒤편으로 바라보았던 여리고성처럼,
아무리 큰 문제라 할지라도 순간 작아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이 싸움은 다시 쓰러진 사자와 곰의 경험으로 우리 안에 누적되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견고한 요새가 될 것입니다.
믿음이란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에 평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본 순간 문제가 작아지는 경험’을 말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돌려 십자가의 그 영광으로 비춰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