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이 피로 변하자 바로는 이를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두 번째 재앙이 시작되자 바로는 견디지 못하고 먼저 모세와 아론은 불러 거래를 제안합니다.
두 번째 재앙은 나일강에서 끊임없이 개구리가 올라오는 재앙이었습니다.
개구리로 뒤덮인 애굽의 풍경은 섬뜩했습니다.
왕궁에도, 침상 위에도, 신하의 집과 반죽 그릇에도 개구리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괴로움이기도 합니다.
나일강은 일주일 만에 회복되었지만, 개구리는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개구리는 양서류라 물 밖에서 오래 살지 못합니다.
먼저 올라온 개구리들은 이미 죽어 부패하고 있었고, 새로운 개구리들이 끊임없이 나일강에서 밀려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모든 공간에, 모든 시간에, 심지어 공기까지 개구리로 가득했습니다.
성경은 개구리가 물러가자 그제야 바로가 숨을 쉬었다고 기록합니다.
일상이 완전히 점거당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개구리 재앙은 생명을 빼앗을만한 재앙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재앙이었습니다.
개구리로 덮인 애굽은 단순한 재앙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신화와 거짓 질서가 얼마나 숨 막히는 혼돈인지를 가시화한 현장이었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어 전치사 ‘베’를 사용하여
개구리가 궁 “안에”, 침실 “안에”, 화덕 “안에”, 떡반죽 그릇 “안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표현으로 개구리가 백성들 “안에”, 신하들 “안에”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개구리가 어떻게 사람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 이 재앙의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는 헤케트와 크눔이라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크눔이라는 염소 머리 신이 흙으로 빚어서 사람을 만들고,
개구리 머리 여신 헤케트가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애굽인들은 자신들이 신들과 같이 영적인 존재라고 믿으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삶과 관련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들 “안에” 개구리가 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개구리는 그들이 자부하던 영적인 존재의 가현입니다.
그들의 신화 속에선 모든 것이 영적이었지만, 정작 하나님이 그 영적 세계를 현실로 드러내시자 그들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삶”이라 자부하던 것은 결국 거짓 영의 덮임이었던 것이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이집트 신화 이야기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문화에는 진리의 흔적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진리를 흉내 내어 신화를 만들고 통치수단으로도 삼을 수 있지만 거짓은 결코 진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따라쟁이 요술사들은 흙이 이로 변하는 재앙에 이르자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이상 흉내 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유사진리는 진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에도 개구리처럼 들러붙은 거짓 영들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과 가치관, 습관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삶 전체를 덮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미묘한 질서입니다.
유사진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질서를 허물어 우리를 살리십니다.
그분은 무질서를 드러내시고, 참된 질서를 다시 세워 가십니다.
출애굽기의 개구리 재앙은, 하나님이 분노로 세상을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은 영적입니다.
먹지 않아도 되시는 하나님께서 먹어야 사는 인간을 창조하신 것 자체가 거대한 유비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하신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개구리만 몰아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거짓 영으로 채워진 삶입니다.
컵에서 공기를 빼려면 물을 채워야 하듯,
어둠을 몰아내려면 빛을 켜야 하듯,
거짓 영을 몰아내려면 진리의 영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의 방식입니다.
출애굽의 재앙은 심판이 아닙니다.
오히려 무질서에서 질서를 세워가시는 창조의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에 얼마나 질서가 무너져 있는지, 얼마나 무질서 속에 살고 있는지를 가시화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가심으로써 질서를 재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개구리가 모든 영역을 덮었듯이, 주님은 성령께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덮어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가정과 일터, 마음과 몸, 떡반죽 그릇까지도 성령의 통치 아래 두길 원하십니다.
개구리를 눈으로 보기 전까지 거짓 영으로 덮인 일상을 보지 못했던 이집트인들처럼,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온 땅을 덮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탐욕과 죄악으로 무너져버린 무질서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죠.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여전히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세워가시며,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의 향기로,
거짓이 가득한 세상을 진리로 덮어주셨음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실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