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흔히 ‘산 넘어 산’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고개를 겨우 넘었나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더 가파른 산길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직장에서의 반복되는 갈등, 끝이 보이지 않는 육아의 터널,
그리고 쳇바퀴 돌듯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게는 ‘산 넘어 산’으로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가파른 고갯길에서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부상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지쳐 쓰러져 절망하게 될 때면
이 산길을 계속해 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냥 이쯤에서 포기할까? 돌아갈까?’
시편 121편은 바로 그런 ‘산 넘어 산’의 막막함 앞에 선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의 성전을 향해 순례의 길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순례자의 눈앞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부르는 험준한 장애물이었습니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타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순례의 길입니다.
게다가 이 여정은 성전에 도착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 역시 동일하게 고된 여정입니다.
심지어 이 길을 일 년에 세 번씩, 평생을 오가야 합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실 것”이라고 축복하며
우리의 일상이 순례길처럼 고된 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 시의 독특함은 시에 사용된 동사들의 시제에 있습니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동사는 히브리어의 ‘미완료형’입니다.
이는 과거의 경험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겪게 될,
그러나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향한 노래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경은 이제 막 아버지의 손을 놓고 생애 첫 독립 순례를 시작하는 13세 소년,
즉 성인식을 마친 아들에게 불러주는 아버지의 노래입니다.
유대 전통에 따라,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순례에 동행해야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밤새 자신을 위해 불침번을 서는 모습을 보아 왔고,
낮의 폭염 속에서 자신의 머리 위로 겉옷을 펼쳐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버지의 수고를 목격하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13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르는 날, 아버지는 잡았던 아들의 손을 놓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니던 산 길을 이제는 혼자서 넘어야 합니다.
넘어지려 할 때마다 잡아주던 아버지의 손 없이, 아들은 인생이라는 고된 순례길을 넘는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방임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여호와는 너를 지키는 이시라, 너의 오른쪽에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노래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네 오른손 위에 닿아있는 그늘”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 옆에 서 계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손 위에 그분의 손을 직접 ‘포개어’ 얹고 계신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들아, 이제는 내 손 대신 하나님의 손이 네 오른손을 덮으실 거야.”라는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아버지의 이 질문은 막막함의 토로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평생 경험해 온 삶의 비결을 전수해 줌입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 서로 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산’이라는 장애물보다 더 크신 ‘창조주’를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산길에서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천지를 지으신 전능자의 그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하지 못하고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대신 그 상함을 모두 다 받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은 우리가 맞아야 할 상함을 대신 맞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상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인생의 폭열 속에서도 안전한 그늘을 누립니다.

시편 121편은 흔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15편의 노래들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직역하면 ‘성전 계단의 노래’입니다.
하지만 시 121편은 나머지 14곡의 노래들과는 달리 ‘성전 계단의 노래’가 아니라
히브리어를 직역하였을 때 ‘성전 계단을 위한 노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고된 산길을 걷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감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함께 걷는 순례길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인생은 ‘산 넘어 산’일지라도 결코 지옥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길 자체가 우리에게 사랑으로 가득한 성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상의 나감과 들어옴을,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실 겁니다.
오늘도 그분의 그늘은 우리의 오른손 위에 얹혀 있습니다.
그 영원한 밀착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다시 눈을 들어 다음 산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산은 여전히 높고 길은 험할지라도,
우리와 함께 걷는 그분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며 안식처이기에,
우리의 오늘은 아골 골짝을 걸어도 하늘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