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십계명의 1계명을 처음 마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듭니다.
배타적이라는 인상 때문입니다.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언,
관용도 중립도 없다는 단호함.
1계명은 자유를 억압하는 울타리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금지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사랑이란 원래 베타적인 것입니다.
이 말은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가장 따뜻한 진실입니다.
사랑이란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구별되어지는 특별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특별함을 ‘거룩’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하십니다.
거룩이 사랑의 본질인 탓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사랑을, 다른 존재와 나누실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자리에서 오직 그만이 받으셔야할 영광과 사랑을 나누어 가지려는 모든 것은 ‘다른 신’입니다.
1계명이 그저 배타적으로만 느껴졌다면, 그것은 계명의 엄격함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계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만큼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다른 신”의 정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신명기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하고, 이사야는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다른 신이란 실재하는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탄조차 타락한 천사로서 한낱 피조물일 뿐, 결코 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유는,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어진 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어진 신, 가나안의 바알과 아세라를 찾았던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들은 내 욕망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드린 정성만큼 보상을 주는 ‘통제 가능한 신’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신이란 언제는 그런 필요에서 태어납니다.
결국 다른 신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욕망의 그림자입니다.
바알이든 아세라든, 그것들을 만든 동기를 추적해 보면 결국 ‘나’에게 도달합니다.
내 필요, 내 계획, 내 욕망.
다른 신은 허수아비일 뿐, 비선실세는 언제나 ‘나’입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으려고, 허수아비를 앞세워 하나님을 그 자리에서 밀어내고,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내가 하나님 대신 앉으려는 심산으로 자꾸 ‘다른 신’을 만들어 내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교묘한 형태의 다른 신도 있습니다.
다른 신의 이름이 반드시 바알이나 아세라나 아스다롯 같은 이름일 필요는 없지요.
다른 신은 때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도 합니다.
내가 믿고 싶은 모습으로 재구성된 하나님,
내 욕망을 거스르지 않는 하나님,
내 삶을 통제하지 않는 하나님.
이름은 같지만, 실체는 전혀 다른 존재, 다른 신입니다.
죄인들은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하나님을 올려두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름만 하나님일뿐 여전히 다른 신입니다.
그리고 목놓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지라도,
실상은 다른 신을 앞세워 그 틈에 보좌에 앉으려하는 교활한 비선 실세는 여전히 ‘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 얼굴 앞에 두지 말라시던 ‘다른 신’은 결국 ‘나’ 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바벨탑 사건 때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늘까지 탑을 쌓으려 했고,
첫사람 아담도 하나님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것은 타락한 사람의 본질적 죄성인 것입니다.

1계명의 요구는, 처음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우상숭배자들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 배타성의 기준이 점점 조여 와서 결국 숨어있던 나의 죄성까지 하나님 앞에 피고인이 되어 세우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서 1계명을 완전하게 이룬 사람이, 사람 중에 있을수 있을까요?!
한 분이 계십니다.
광야에서 모든 영광을 제안받고도 하나님만을 선택하신 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뜻을 내려놓으신 분,
십자가에서 버림받는 순간까지도 “나의 하나님”이라며 하나님만을 높여 부르신 분.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두셨습니다.
자기 목숨조차 아버지 위에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1계명을 완전하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의 순종은 단순한 모범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그리스도의 그 순종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이 계명 앞에서 도망치는 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응답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주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모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1계명의 배타성은 결코 냉혹한 배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언어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혼합할 수 없으며,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 아닌 것들과 나란히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이기에 결코 거칠지 않습니다.
진리만을 행하되, 분노의 철퇴로 부수어 뜨리는 정복자로 군림하지 않게 합니다.
그분의 철장은 우리의 교만과 죄성을 부수고 오직 사랑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1계명의 배타성은 주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섬기에 하는 동기가 되고 삶의 목적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