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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계명 : “다른 것으로는 만족하려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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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마지막 요구는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명령으로 마무리됩니다.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이 주로 행위에 대한 부분들을 순종의 열매로 요구하셨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열번째 계명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 열번째 계명으로 인해 나머지 모든 계명들은 행위의 단계까지 이르지 않아도 불순종의 범죄를 일으키는 계명이 됩니다.
그래서 열번째 계명은 십계명 전체를 하나의 요구로 묶어주는 계명이라할 수 있습니다.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과녁 삼는 마음의 영역은 탐심입니다.
탐심이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갈망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경에서 찾습니다.
돈이 부족해서, 건강이 부족해서, 인정이 부족해서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만족을 원할수록 오히려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만족할 것 같지만, 막상 얻고 나면 더 좋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탐심의 문제란 욕망이 문제이니 욕망을 제거하는 방법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열번째 계명은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만족의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란 진실을 알려줍니다.
탐내지 말라는 명령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마드’는 부정적 의미를 담은 단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지으신 나무들을 가리켜 ‘보기에 아름답고’라며 표현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아름답고 만족할만한, 그래서 갈망할만한 상태에 대한 표현이 ‘하마드’입니다.
그렇기에 만족하고자 하는 갈망이나 사모함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도리어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두신 선한 능력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만족할만한 것으로 여기느냐, 곧 사모함의 방향에 있는 것입니다.
사모함의 방향이 무엇을 향하느냐가 만족의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 만족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직분, 가정, 건강, 재능, 사역의 열매, 형통한 삶으로 만족해보려 애씁니다.
그러나 사모함의 방향이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채워주신 것들을 향해 있어도,
사람은 이내 감사를 잃고 만족을 잃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헤아려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웃에게 주신 것들을 함께 살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탐내지 말라는 명령에는 전제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웃의 집을, 이웃의 아내를,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전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겐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왜 나에게는 두 달란트, 혹은 한 달란트를 주셨는가!?’ 
하고 생각하며 공평하지 못하다고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많이 받았을까? 나는 왜 이것밖에 받지 못했을까? 왜 저 사람은 형통하고 왜 나는 어려울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새 이웃이 가진 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어 버리는 순간 탐심이 시작됩니다.
이웃과의 비교는 우리를 만족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웃을 비교 대상으로 할때 생기는 열등감만 문제는 아닙니다.
감사와 만족의 상실뿐 아니라 감사와 만족 자체가 이웃과의 비교 상대적 우위에서 발상한다면,
이러한 우월감 역시 열번째 계명에 저촉됩니다.
히브리어 ‘하마드’가 만족하고자하는 마음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이는 소유의 부재만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은 더 나은 이웃을 발견하는 순간 열등감으로 순식간에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
결국 열등감과 우월감은 출렁이는 파도와 같이 반복되는 동일본질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모함의 시선은 소유를 향해서도, 혹은 사람을 향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로는 결코 완전한 만족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은 모두 귀한 선물이지만,
그것들은 원래 만족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15: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상급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 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사랑합니다.
형통을 사랑하고, 응답을 사랑하고, 은혜를 사랑하고, 열매를 사랑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 자체를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사랑한다면,
결국 우리의 만족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물이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지고, 열매가 줄어들면 감사도 줄어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건강이 줄어들어도 하나님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져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사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만족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물 밖으로 뛰쳐나온 물고기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사치품이나 더 비싼 선물이 아닙니다.
물고기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물입니다.
물이 없으면 어떤 선물로도 그 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물 밖에 나온 물고기와 같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물로 돌아가지 못하는 죽어가는 물고기 같은 우릴 위해,
바다가 물고기에게 다가와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족의 시작은 성경에서 약속하신,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보화가 될 때,
우리는 그제서야 만족을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