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유를 좋아합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며,
내 인생을 내가 결정하는 삶.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1장에는 참 이상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6년 동안 그는 품꾼으로 살았습니다.
노예는 아니지만 가난한 상황 때문에 자신의 노동력을 6년간 팔기로 계약한 사람입니다.
7년이 되도록 주인만을 위해 살았던 그는 이제 자유인이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제야 나만을 위해 살 자유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말합니다.
“나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아주 짧게 기록합니다.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주인이 맺어준 가정에 대한 사랑이 이 사람을 영원한 종살이에 머무는 결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붙잡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은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습니다.
사랑은 족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랑은 스스로 머물게 합니다.
사랑은 자유를 빼앗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유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내려놓게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자원함으로 이루게 합니다.
이 종은 억지로 종이 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자유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 때문에 그는 평생 종이 되기를 선택합니다.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종에서 자유인이 되는 이야기를 기대하는데,
성경은 자유인이 영원한 종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바로 이어 또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한 여자입니다.
그녀는 6년간의 노동력을 계약하고 들어온 일반적인 여종들과는 달랐습니다.
이 여자는 평생토록 주인을 떠날 수 없습니다.
대우가 다른 이유는 남녀 차별의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이 여자는 신부 값을 주고 데려온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값을 주고 아내나 며느리로서 가정에 들여온 여자에 대한 처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외국에 팔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고,
먹을 것과 의복과 동침을 끝까지 제공하라고 말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든지 아내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 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이 남편 된 사람이 행해야 할 사랑의 언약에 대한 책임과 신실함입니다.
그녀는 못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버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랑의 언약에 매인바 되어 그 헌신으로 인해 떠나지 않고,
또 한 사람은 사랑의 언약에 묶인 바 되어 그 신실함으로 버려지지 않습니다.
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가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랑의 언약이라는 관계의 헌신과 책임이 있습니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사이로 만들어줄 사랑의 언약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시작은 모두 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값을 주고 신붓감을 데리고 온건 주인입니다.
‘상전을 영원히 떠나지 않을 사람’을 보내어 남종에게 가정을 이루게 한 것도 상전이었습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면, 주인의 딸이거나, 주인이 며느리 삼으려고 데려온 여자입니다.
다른 말로 말해 주인은 종을 아들로 대우한 것입니다.
노예가 아니라, 품꾼이 아니라, 아들로 대우하고 먼저 사랑한 사람이 상전이었던 것입니다.
위에서부터 먼저 시작한 사랑은
그 사랑의 끈으로 대상을 묶어 영원한 언약 앞에 데리와,
스스로 영원한 사랑의 관계 안에 닻을 내리게 합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종의 길을 선택하셨던 이유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억지로 끌려가신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언약 관계를 위하여 그분께서 친히 내어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위로부터 시작한 사랑은 문설주 앞으로 그를 데리고 갑니다.
사랑에 매여 이끌려온 문설주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순종해야 할 단 하나의 규례가 적혀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문설주에 기록된 이 영원한 사랑의 언약 위에 귀를 대로 구멍을 뚫는 것은
우리를 떠나지 않기 위해,
우리를 버리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손과 발을 뚫리셨던 일에 연합하는 일이 됩니다.
사랑은 권리를 내려놓게 합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권리를, 자아를 포기하고, 주인을 위해 살기로 사랑의 언약에 닻을 내릴 때,
그때부터 종이라는 이름은 가장 자유로운 이름이 됩니다.
신부가 됩니다. 아들이 됩니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가족이란 사랑의 언약에 매이게 됩니다.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나를 붙들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복음이란,
“이제 네 마음대로 살아라” 가 아닙니다.
“이제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신 주인을, 신랑을, 아버지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미 값없이 자유하게 된 사람이 사랑 때문에 다시 주인께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복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사랑에 순종하시고, 사랑을 완성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묶어,
피 묻은 문설주 앞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데리가 나올 겁니다.
문설주에 새겨진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귀를 꿰뚫어,
사랑으로 스스로 종노릇하는 우리를 주님은 아들로, 딸로, 신부로, 교회로, 삼아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붙잡아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진정한 사랑에 닿게 하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