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온 모세에게 십계명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규례들에 대해 가르쳐 주시며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6계명에서 명령하신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명령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되었기에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보아도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보여줄 수 없는,
고의로 범죄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이기를 저버린 자들은,
그 훼손이 하나님을 곡해하게 만들지 않도록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된 자, 다시 말해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돌아올 형벌이란,
‘반드시 죽이라’는 말씀 그대로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여야 할 사람들 중에는 ‘살인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맡기신 부모를 향한 물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역시
그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범죄였습니다.
그런데 고의로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한, 반드시 죽여야 할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중,
예상을 벗어난 사례가 하나 등장합니다.
부모를 친 자(15절)와 부모를 저주한 자(17절)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할 자들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납치한 자의 이야기가 끼어 있습니다(16절).
납치란 사람을 훔쳤다는 표현으로 묘사됩니다.
사람을 훔친 자들은, 팔았든지 혹은 ‘자기 손 아래에’ 두었든지, 반드시 죽이라고 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자기 손 아래 두는 것만으로도 사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하려는 것,
성경은 그것을 살인과 같은 무게로 평가합니다.
사람은 값으로 환산될 수도, 소유될 수도, 조종될 수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조문이 납치범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자녀의 인생을 제 손으로 설계하고 주무르려는 부모의 손,
배우자를 뜯어고치려는 손,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람을 사용하려는 손,
말과 죄책감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손,
우리가 누군가를 나의 소유물처럼 내 손 아래에 두고자 하는 이러한 욕망의 구조가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이상하리만큼 화가 나곤 합니다.
자녀가, 배우자가, 직원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 안에 들어오고, 내 손 안에 있어 주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다루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런 행동을 사랑이라고, 혹은 리더십이라고 부르며,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라 생각하여 넘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유화에 대한 변명입니다.
이는 명백히 상대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여기고자 하는 ‘사람을 훔친 범죄’에 해당합니다.
자녀를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을 훔친 것이 됩니다.
직원을 내 소유물로 여길 때 우리는 사람을 훔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이 죄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모두 고의적 범죄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율법은 고의범에게 살 수 있는 문을 전부 잠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고의로 훼손한 자들은 반드시 죽임당해야 합니다.
심지어 제단 뿔을 잡아도 끌려 나옵니다.
요압이 그렇게 죽었습니다(왕상2:28-34).
도피성으로 피하여도 숨을 수 없습니다.
도피성조차 고의범은 받아주지 않습니다(민35:16).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몸값을 지불하는 속전마저 고의범에게는 적용이 금지됩니다(민35:31).
제단도, 도피성도, 속전도 고의범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제단과 도피성, 그리고 속전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경우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저버린 죄인들이 살아날 오직 단 하나의 예외란,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출 21:13), 오직 이 표현에 해당하는 경우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표현을 ‘고의적인 범죄’에 대한 반대말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수나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입니다.
우리 손에 하나님이 사람을 넘겨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정확히 그 문장을 입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막 9:31).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 2:23).
하나님이, 사람을, 우리 손에 넘기셨습니다.
사람을 소유물로 여기고 잡아 흔들려던 바로 그 손에,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쥐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그 손이 못 박히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리스도께서 고의적인 범죄자들을 ‘알지 못하고 행한 자’로 여겨달라고 간청하심은,
‘하나님이 그의 손에 사람을 넘긴 것이라면 도망할 곳, 곧 도피성을 마련해 주시겠다’는
출애굽기 21장 13절을 이루시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 덕분에 우리는 살았습니다.
사람을 붙잡던 손을, 그리스도를 붙드는 손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사람을 내 소유물로 여기고 손 아래 쥐려 하던 우리의 손에,
자녀 대신, 남편 대신, 직장 후배 대신,
그리스도를 쥐여주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