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뉴시티 매거진 뉴시티 칼럼 “범죄보다 앞선 은혜”

“범죄보다 앞선 은혜”

0
5

시내산의 구름 속에서 하나님은 사십일 동안 모세에게 성막 제작을 명령하시며 성막 제작의 구체적 사안들을 직접 가르쳐주셨습니다.
출애굽기의 중반부를 넘어선 후 등장하는 이 성막 이야기는 동일한 내용의 기록이
출애굽기의 최종부에서 다시 한번 반복하여 다뤄지게 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고,
뒤에서는 백성이 받은 명령 그대로 성막을 만드는 장면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명령과 실행의 너무나 닮은 반복 사이에는 커다란 사건 하나가 경첩처럼 끼어있습니다.
바로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실 성막을 제작하도록 명령하시는 동안,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우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막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위한 거처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거룩하고 성결하게 기다렸어도 모자랄 판국에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죄인들로서 증명해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마련하도록 명령하신 일들이 그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부분에서 놀라운 점이 발견됩니다.
금송아지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던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배신 행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한 성막 제작의 명령은 폐기되거나 변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그 모습 그대로 결국 성막은 제작되었습니다.
모세는 완성된 성막을 보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다”(출애굽기 39:43) 확인했습니다.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할 분께 집이 필요할 리 없습니다.
성막이 필요한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백성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을 통째로 불태우고 있는 하나님의 불길을 바라보며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속죄와 중보의 가려짐 없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진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간이 아니라 죄인을 살릴 방편이었습니다.
그 방편으로써 예비하신 것이 성막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성막을, 아직 금송아지 사건으로 그 죄악 된 본성이 폭로되기도 전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제시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범죄보다 앞서 해결책을 먼저 준비하셨습니다.
대속의 장치들로 겹겹이 둘러싼 성막을 통하여 죄인들의 과오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영광의 불길이 그들에게 닿지 않도록 하신 은혜의 방편, 성막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해결책은 언제나 우리의 범죄보다 앞서 마련됩니다.
성막을 제작하라고 명령하신 방법과 모양에 변경 없이 실제 제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죄인을 용서하시며 함께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배신 때문에 폐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들의 범죄보다도 앞서 모든 은혜를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은 성막을 만들 재료 또한 그들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과 각종 가죽들과 보석을 가져오게 하셨지만,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 이미 그들의 손에 쥐여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받으시기 전에 먼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간이 창조되기도 전부터, 우리가 범죄 하기도 전부터 죄인들을 위하여 먼저 준비된 은혜도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성막이 가리키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성전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을 헐라고 하시면서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선언하셨을 때,
이때 성전은 성막 되신 자신을 가리켜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막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성막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것은
결국 죄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의 은혜, 곧 그리스도의 은혜여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성막의 제작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일의 유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을 부어주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신앙의 선배들은 이 은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2)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본래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영광을 바르게 드러내는 지혜로운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한다는 것은 그분을 드러내는 일이 억지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발원한 기쁨임을 증명하는 삶입니다.
다른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야 말로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자 추구해야 할 즐거움,
즉 자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원하는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광이 이 삶에 구현되는 성막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을 넘치게 부어주셔서 우리를 교회로 세워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