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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가 속죄가 되고 속죄가 만남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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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시면서 가장 먼저 만들게 하신 것은 지성소 안에 놓일 증거궤였습니다.
하나님은 조각목으로 상자를 만들고 안팎으로 금을 입힌 궤와,
그 위에 순금으로 만든 덮개 양 끝에 두 그룹이 날개를 펴 서로 마주 보게 만든 속죄소를 가리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출25: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룹은 에덴에서 범죄한 인간이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을 지키던 존재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서는 그룹들 사이에서 만나주시겠다니,
막혀버린 길에서 어떻게 만남이 가능하겠습니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만남이 가능해지는 이유가 바로 증거궤에 담겨 있습니다. 

증거궤를 ‘증거’ 궤라고 부르는 이유는 궤 속에 들어있는 증거판 때문입니다.
증거판이란 하나님께서 직접 선언하신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말합니다.
‘증거’라는 뜻의 히브리어 ‘에두트’는 9계명의 ‘거짓 증언’과 같은 뿌리를 가진 법정 용어입니다.
‘증거’란 법정에서 죄와 무죄를 가르게 될 결정적 단서를 말합니다.
십계명의 두 돌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유무죄 판결의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친분, 상황이 기준이 아니기에 이로써 그 앞에 선 모든 사람들의 유죄가 증명됩니다.
즉 증거판은 첫째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증거 하고,
둘째로 그 앞에 선 인간의 죄악을 증거 합니다.
또한 증거판은 그 외에도 한 가지 사실을 더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내 백성’이라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노릇 하고 있는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며
‘너희가 내 계명을 잘 지키면 내가 너희를 구원해 주마’하고 구원의 조건으로서 십계명의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홍해를 갈라 그들을 건지신 뒤,
그들을 향한 순종의 요구보다 앞서 십계명을 수여하셨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첫마디는 “나는 너희를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고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십계명은 바로 그 사실의 증거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증거’ 위에서 속죄를, 그 속죄 위에서 ‘만남’을 약속하셨습니다. 

증거가 속죄가 되고 급기야 만남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증거판이 담긴 궤가 의미하는 바, 곧 죽음 때문입니다. 
증거판이 들어 있던 ‘궤’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아론’은 모세오경에서 증거궤 외에는
단 한 번,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의 시신을 넣은 ‘관’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아론’은 ‘관’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두 가지 ‘아론’을 들고 다녔습니다.
한 가지는 요셉의 시신이 담겨있는 ‘아론’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두 돌판의 말씀이 담겨있는 ‘아론’이었습니다.
말씀을 담고 있는 이 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증거판의 기준대로라면 죽어야 할 우리였지만,
우리는 순종할 수 없던 그 말씀을 온전히 이루신 분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이 죽음에 던져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그룹이 지키던 에덴에서의 막혔던 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다시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음을 증거 하는 부활의 아침,
빈 무덤의 풍경은 ‘그곳에서 내가 너와 만나겠다’는 증거궤의 약속이 비로소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열려진 예수님의 무덤에는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마치 증거궤의 속죄소 양 끝에 두 그룹처럼,
하나는 예수님의 시체가 놓였던 머리 편에, 다른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마리아와 여인들 그리고 제자들을 약속대로 다시 만나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우리의 순종도, 의로움도 아닙니다.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당하셨던 그 죽음 위에 예비된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만나주시는 증거궤를 따라가야 합니다.
증거궤는 약속하신 안식의 땅에 이를 때까지 백성과 함께 움직입니다.
그래서 증거궤의 금고리에는 이동을 위한 채가 꿰어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증거궤에 붙은 일체형 손잡이로 채를 만들지 않고 고리에 꽂았다 뽑았다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진 것은
이 채의 기능이 임시적이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채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만 임시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증거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도, 심지어 솔로몬의 성전에 안치된 이후로도,
증거궤의 채는 고리에서 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막도, 성전도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은혜를 입은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주께서 여전히 우릴 위해 움직이고 계시니 우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광야를 걸었듯, 우리도 주의 죽으심을 짊어지고 주를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에 정착한 삶이 아니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아직 증거궤와 함께하는 나그네의 삶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나그네 같은 인생길에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실 거예요.
주님은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 거기서 우리를 만나 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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