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성막의 기물들을 제작하도록 명령하시면서 그것들을 운반할 방법까지도 정해 주셨습니다.
증거궤는 발치에 네 개의 금고리를 달아 채를 꿰어 메게 하셨고,
진설병 상은 턱 아래에 금고리를 달아 채를 꿰게 하셨습니다.
이후 제작하게 될 분향단도 그 몸체에 고리를 달아 채를 꿰어 메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번제단만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번제단의 몸체에 직접 고리를 달라고 명령하시는 대신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그물의 네 모퉁이에 고리를 달아,
그 고리에 채를 꿰어 제단을 운반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기물들은 자기 몸에 달린 고리로 들어 올려지는 반면,
번제단은 그물에 달린 고리로 들어 올려졌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마치 시장에서 수박을 그물망에 담아 들어 올리듯,
번제단도 그물에 담긴 채 함께 들어 올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제단을 들어 올리게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그물은 그다지 반가운 물건이 아닙니다.
한번 사로잡히면 제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심판의 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 위에 그물을 치시고(호 7:12),
반역한 왕을 그물에 걸어 바벨론으로 끌고 가십니다(겔 17:20).
예수님의 천국 비유에서도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을 선별하여 못된 것은 풀무 불에 던져버립니다(마 13:47–50).
번제단의 놋 격자를 가리키는 용어인 ‘미크바르’와 뿌리를 공유하는 낱말 중 ‘케바라’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곡식을 까부르는 ‘체’ 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만국 중에서 체질하시되 한 알갱이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암 9:9).
그물은 사로잡고, 체는 걸러냅니다.
그렇다면 번제단의 놋 그물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걸러내는 것일까요?
그물이 들어 올려지면 무엇이 남아 있게 될까요?
그물 위에 남는 것은 언제나 번제단 뿐입니다.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틀을 만들고 놋을 입혔습니다.
바닥을 만들라는 명령은 없고 오히려 속을 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놋 그물이 아래쪽을 바구니처럼 감싸고, 그 아래 흙이 실질적인 제단 바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토단 위에 이 놋 제단을 올려두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들은 토단 위, 곧 번제단 안쪽에서 제단과 함께 불타올랐지만,
제물이 전소한 뒤에도 언제나 제단만은 남았습니다.
그저 놋이 불에 강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놋으로 입혔어도 그 안에는 조각목이 있습니다.
돌과 흙, 도랑의 물까지 삼켰던 여호와의 불(왕상 18:38)을 재료의 힘으로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여호와의 불이 번제물과 기름을 사를 때 제단은 남았습니다(레 9:24).
마치 불이 붙었으나 소멸되지 않았던 떨기나무처럼 말입니다.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남길지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민수기 16장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분향하던 반역자 250명을 삼켰습니다.
사람들은 심판받았지만 그들이 사용하던 놋 향로들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앞에 드려져 거룩하게 된 그 향로들을 두드려 펴서 번제단을 싸는 판으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 사용하던 놋이,
심판 이후에도 남아 거룩한 제단에 덧입혀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번제단의 놋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심판을 기억하게 하는 표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놋 그물과 놋 제단의 묘한 역설이 드러납니다.
심판과 사망을 연상시키는 그물에,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게 하는 놋 제단이 담겨 들어 올려집니다.
그 제단에서는 제물이 불살라지고 제물의 피는 번제단의 흙바닥에 쏟아집니다.
희생 제물의 피를 땅에 쏟을때마다 번제단의 뿔에도 그 피를 바름으로써
뿌려지는 피 흘림에 이 놋제단도 함께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심판의 불길이 모든 것을 사른 후 그물의 고리에 꿰어진 채를 들어 올리면,
여전히 놋 제단이 그물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꽃을 품고도 소멸되지 않은 제단이 들어 올려지는 것입니다.
그물은 사로잡는 도구인데, 여기서는 남은 것을 들어 올리는 도구가 됩니다.
심판의 그물이 구원을 생각하게 하는 그물이 되는 역설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죄의 책임을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의 힘으로 견딜 수도 없는,
사망의 그물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걸려야 할 사망의 그물을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지고 죽임당하셨으나 사망에 매여 있지 않으셨습니다(행 2:24).
심판을 피해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망의 심판에서 건져 올려지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구원의 그물이 되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올리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굳게 붙잡았느냐 하는 우리의 공로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주를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주께서 그물로 붙잡아 주시는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제 자신의 공로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나의 공로가 아닌 그분의 공로가 필요합니다.
주님께 건짐 받은 사람들, 그래서 주를 닮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이 그러셨듯 우리도 사망의 그물에 붙잡힌 자들을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의 사랑으로 우리는 그물을 들어올리는 어부가 될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