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힘의 원리로 운영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분명해 보이는 힘은 돈입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면 안락함 뿐 아니라 존경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정도 사랑도 돈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재 그런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런 가치를 지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힘의 원리로 굴러가는 사회.
그 힘의 실제가 정치적 권력이건 물질적 재력이건 간에
강자가 약자를 무릎 꿇리고 힘으로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는
힘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고 바른 세상살이의 방법이자 지혜로 여겨지곤 합니다.
의자 뺏기 게임과 같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원한다면
빼앗기기 전에 빼앗아야 하는 법이며, 먹히기 전에 사냥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법입니다.
사회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심지어 가정조차도 위력에 의한 운영이라는 오해와 위험에 노출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힘의 원리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를 운영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사랑의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창조되기 전, 공간이 창조되기 전, 그래서 시간도 흐르지 않던 태초에,
오직 사랑만큼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교제하시는 행복으로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성부는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성자는 사랑을 받는 분이시기에
그 관계상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로 불립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숨결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연합하시기에 세분은 공동체적 사랑으로 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사랑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성품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바로 사랑이십니다.
완전하고 온전한 그분은 서로를 향한 그 내적 사랑을,
하나님이 아닌 외부의 대상들을 향해 드러내시기로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던 그 뜻과 의지와 계획이, 삼위의 바깥을 향해 드러나는 ‘계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계획을 드러내어 실체로 구현하신 하나님이 바로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언어란 화자의 내면속 사고와 계획과 의지를 드러내 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을 계시하시는 예수님을 성경은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성자로 말미암아 계시된 것이 세계이기 때문에,
창조된 이 세계는 사랑의 원리로 운영되는 세상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사랑으로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고 운영하시며 섭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의 원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원초적이고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세계의 운영 원리’ 앞에서 벽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아니라 힘을 믿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충돌하여 스스로를 파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인생이 무너지고 그의 존재도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사랑의 원리로 섭리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른 사람의 약점이란
공격해야 할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채워주고 도와주어야 할 목적이 됩니다.
서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갈 때
그제서야 세상은 창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되며,
우리는 존재의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창조 세계의 원리가 바로 그러한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