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항해할 때 필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망망대해에서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합니다.
나침반 없이는 지도도 의미가 없습니다.
어느 방향을 향해 항해하는지 설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 배는 곧 표류하고 맙니다.
사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필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바람 부는 밤이 지나면 사구가 옮겨져 지형지물이 바뀌는 사막에서 나침반이 없다면 지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막에선 비록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더라도
변하지 않는 방향을 설정하고 요동 없이 전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유행가만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 그 진리에 우리는 목적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표류하고 맙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설정하는 일입니다.
이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목표가 정량적인 개념이라면 목적은 개념상 방향성에 더 가깝습니다.
목적이 분명하게 설정되지 못하면 인생은 표류하게 됩니다.
목적 없이 목표가 있을 수 없고, 목적 없이 수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가 아닌 가변적인 것에 목적을 설정하면,
그 목적은 어느덧 갈 바를 잃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으로 사용하던 것들을 어느새 목적의 자리에 앉히는 웃지 못할 일들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창조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의 행태를 볼 때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심이 인간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사랑의 존재로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어떠한지 인간의 다스림을 통해 드러나 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세상을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으로 피조 세계를 다스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즉 인간은 자원함과 기쁨으로 세상을 섬길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목적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남이 삶의 목적이요, 세상을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수단이며 목표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삶의 목적을 설정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행복과 안락한 삶을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삶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자 곧 목적 없는 인생은 표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섬기는 것’은 어느덧 수단이 아니라 목표와 목적이 되었습니다.
섬김은 더 이상 다스림이 아니라 숭배가 되었습니다.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스림을 받고 자연을 숭배하게 됩니다.
원래 사람에게 있는 종교성이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연을 숭배하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다스려야 할 것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돈도 가정도 직업도 관계도 우리의 숭배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스려야 할 대상들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할 때에야 인생은 표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