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계를 창조하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대리자로서 인간을 창조하셔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보여야 합니다.
사람의 활동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본질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목적이 그것이고, 또한 존재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하고 증명해내야 할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성품과 찬란한 영광이 비춰 보이게끔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녀로 창조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시고 또한 성별도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 남녀의 구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어야 할 임무를 띤 인간을 창조하시면서는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을까?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랑이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아버지 됨과 아들 됨은 처음부터 이 사랑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라 성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대한 이름입니다.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시고, 성자는 성부를 사랑하십니다.
성부는 사랑의 원천이 되시고 성자는 그 사랑의 대상이며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성부는 성령으로 성자를 사랑하시고, 성자는 성령으로 성부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 사랑의 방법이요 연합의 주체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드러내 보여줄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주체로서 그리고 대상으로서 남자와 여자를 각각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사랑으로 다스려야 할 공동체를 맡기셨습니다.
그것이 피조 세계인 것이지요.
그리하여 아담과 하와가 그 사랑으로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릴 때,
사랑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통치의 찬란한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이상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을 보여줄 수 없게 된 사람이 제일 먼저 상실하게 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원망하고 하와는 뱀의 핑계를 댑니다.
사랑도 다스림도 무너져내린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지 못하고 타락해버린 인간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며 명령하신 것은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세워가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랑으로 가정이 다스려질 때에야 하나님의 다스림이 무엇인지 그 사랑이 무엇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못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5:8)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드라마 속의 이상향으로만 남겨둔 채로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가족들을 향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사랑이 회복되고 섬김이 시작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지 천국을 바라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