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따라 인간도 안식을 지키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던 그대로 쉬기 위하여 ‘말라카’라고 부르는 안식일 금지조항을 39개 범주로 만들어 지금까지도 철저히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멈추신 것을, 성막을 만드는 것과 유비하여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의 금지조항인 ‘말라카’에는 독특한 것들이 ‘일’로 분류되어 금지되었습니다.
바늘을 들고 이동하는 일이나, 두 가지 종류의 무엇인가를 서로 섞는 일, 불을 켜는 일 등등이 금지된 일로 분류됩니다.
그들에게 ‘일’이란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쓰느냐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연상시키는 일, 곧 성막 제작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일은 안식일에 금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란 쉬는 날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날’에 가깝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을 ‘일을 멈추는 것(히브리어로 말라카)’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안식을 취하셨던 창세기 2장 1~3절에서 문예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멈춤’이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날은 그저 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2장엔, 여섯째 날까지 일하시고 일곱째 날은 쉬셨다고 표현하지 않고, 그 일곱째 날에 비로소 멈추시고 안식하셨다고 묘사합니다.
안식은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했다고 지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에 지쳐서 쉼이 필요했기에 일을 멈추시고 휴식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일 일을 멈추셨다고 할 때 모든 일을 멈추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지구는 자전을 하고, 빛은 대지를 비추고, 식물은 자랍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운영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의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멈추신 것은 오직 창조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멈추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창조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절은 ‘칼라’라는 히브리어로 창조가 완성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붓을 내려놓듯, 논문이 완성되면 펜을 내려놓듯, 건축이 완성되면 공사를 마치듯,
창조 세계의 본질이 완성되었기에 하나님은 창조를 멈추셨습니다.
즉 안식이란 완성을 누리는 것입니다.
창조의 완성을 누리는 것이 안식일이었다면, 새창조의 완성을 누리는 것이 바로 주일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시던 사역을 다 완료하시고,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창조의 첫 안식은 처음부터 종말의 진정한 안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 기사의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는 표현이 없는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 다시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계21:25).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완성을 누리며 안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이란 단순한 휴식 시간이 아닙니다.
안식은 내가 쉬는 날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날이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이거나 충전과 회복의 시간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이것이 그 날을 주의 날, ‘주일’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안식은 구원의 완성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음미하며 누리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삶의 위로와 평안과 쉼을 주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신 예수님과 함께하길 소망하며,
그 안에 성도의 깊은 교제를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위로와 평안과 쉼의 참 안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