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은 천국과 같은 곳이었지만 또한 앞으로 실제 있을 천국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계시록에서 새예루살렘을 에덴동산의 각각의 보석들과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모습으로 유비하여 묘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에서 천국과 같은 에덴을 설명할 때에 가장 중요한 설명이 되는 것은 바로 에덴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4개의 큰 강입니다.
에덴을 충분히 적시고 흘러나온 물은 큰 강을 4개나 이루게 됩니다.
에덴이 천국과 같은 곳인 이유는 그 땅이 바로 물이 샘솟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1차 독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에덴만큼이나 비옥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하나님이 주마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가며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다면,
이 계시의 1차 독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해 가고 있는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가나안 땅’이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조상 야곱 때에 원래 살았던 곳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피신하였던 것이 4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눌러앉아 살게 된 이유였습니다.
가뭄을 피해 애굽에 왔던 민족이, 이제 비옥하기로 유명한 땅 애굽을 떠나는 것입니다.
애굽이 그토록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은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을 하여 나일강 하류의 땅들을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하여 가고 있는 가나안 땅은 물이 귀한 곳, 샘솟는 물이 거의 없는 땅입니다.
물론 가나안 땅에도 요단강이라는 큰 강이 흐르지만,
이 요단강은 이스라엘이 대부분이 산악 지형인 것을 생각해볼 때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농업에는 활용할 수 없는 강입니다.
그래서 이 가나안 땅은 툭하면 가뭄이 되고 흉년이 드는 곳입니다.
이점에 바로 아이러니함이 있습니다.
얼핏 나일강이 흐르는 애굽 땅과 가나안땅을 단순 비교해본다면, 둘 중 에덴에 더 가까운 땅은 두말할 것 없이 애굽이라는 점입니다.
물이 풍부하고 풍요가 보장된 땅을 떠나 광야를 지나 도착하는 땅이, 해마다 풍년일지 흉년일지 가늠할 수 없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1차 독자인 그들은 에덴의 모습을 읽으면서 가나안땅을 떠올리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을 텐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비옥한 애굽을 떠나려고 했을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약속의 땅인 이유는 하나님이 바로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애굽과는 다르게, 풍요를 위한 물을 거의 대부분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충당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절히 내려줄 때 그 땅은 비옥한 토지로 변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11:14)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늘의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 앞에 순종할 때 풍요하게 삽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새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비로 물을 내려 땅을 적셔주시던 그 나라가 땅으로 임재해버리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반석을 가르고 물이 솟아오르게 하십니다.
어린양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닿는 것들마다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새예루살렘의 도로를 지나 흐르던 그 물은 강을 이루고 그 강 주위로 생명나무 실과들을 맺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좌정하신 심령마다 성전이고 교회이고, 생명을 살리는 에덴의 강가가 됩니다.
에덴의 강가에 산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늘나라의 임재 안에 산다는 말입니다.

 

추신)
이번 칼럼은 설교 때 시간 관계상 다루지 못했던 내용입니다. 
설교로 풀어내면 족히 10~15분 이상은 설명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서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지만 
결국 생략했던 내용입니다. 
아마 설교 주제로 잡는다면 이 주제 하나로 설교 한편이 나올 분량인지라
다음에 비슷한 주제의 본문이 나올때 설교하기로 하고 접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있는 것이 말과 글로 나오는 법인데…
결국 이 글을 써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칼럼을 씁니다. ㅎㅎ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