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1,32).

하늘 아버지를 떠나 우리에게 오셔서 죽임당하시고
옆구리의 물과 피로 죄인이던 우리를 깨끗이 씻어 신부 삼으시고 교회로 세우신 분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남녀의 사랑과 그 연합의 결실을 공유적 속성으로 삼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은
하나님의 사랑과 다스림이 어떤 것인지 모든 피조물에게 보여주어야 할 사명의 시작점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만약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문화도 변화되어,
가정이라는 문화가 붕괴되고 그 안에 사랑이 훼손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으로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 된 교회의 관계를 세상에 설명해주고 보여줄 수 있을까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정의 연합이 제 기능을 잃고, 기쁨으로 충만한 만족과 행복을 잃으면,
그것은 그저 개인사의 불우함에 그치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부부의 관계가 어려운 사람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신랑 되신 그분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사랑하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그에게는 힘든 가정생활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분란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어진 기능의 가정에서 자라난 다음 세대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관계가 어려운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마음에 거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마음껏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운 성도를 저는 본 적이 있습니다.
(확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며 가정형으로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은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의 가정은 그렇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정말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결혼에 대한 경험’만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이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거꾸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우리의 가정을 이해할 시작점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우리도 닮아가도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바꾸어 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활해지면 거꾸로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부부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그리고 회복된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도 성장하게 하십니다.
이런 선순환이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1:6).
그래서 주님의 구원 사역은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리의 모든 관계의 회복과 삶의 회복과 인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더없이 좋은 기쁜 소식이요 복음입니다.
불우하던 가정사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시고, 새로운 선순환을 시작하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이 복음은 우리의 삶을 살리기에 충분할 만큼 넘치도록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삶이 되살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