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태초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이심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언약적 장치가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야 선악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동산 중앙의 나무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하나님께 받았을 때 이미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알았습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선이요,
그 명령에 불순종하고 실과를 따먹는 것이 악이며 범죄라는 것을 아담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담은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대신, 동산에 가득한 다양한 열매들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이 생명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이 명령에 순종하는 동안 생명나무의 실과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담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동산의 실과들을 통해 직접 그 생명을 공급받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아담도 먹어야 사는 존재였습니다.
처음부터 죽지 않고 영생하는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먹거리를 통해 생명을 얻어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아담은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동안 살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죽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동안 살아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담과 선악과를 두고 생명의 연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언약은 목적상 ‘생명언약’이라 부르며,
순종의 행위에 그 조건이 달려있음으로 조건상 ‘행위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선악과는 생명언약이자 행위언약으로서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에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언약적 장치였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명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피조세계에 죽음이 들어오기 전, 아담은 죽음이 무엇인지 목격하거나 경험해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거나 호기심을 갖고 경험해봐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기어이 본인이 경험하여 보기를 선택했습니다.
사탄이 제시한 견해대로, 하나님에게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은 것인지, 혹시 이용만 당할 뿐인지,
죽음이 무엇인지를 직접 경험해보고 그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괜찮은 것인지, 본인이 판단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합니다.
내 눈에 좋은 것을 선한 것으로 여깁니다.
악한 본성을 충족 시켜 줄 수 있는 것을 선한 것으로 여기고 따릅니다.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보기 좋은 것, 내 경험상 좋은 것을 선하다고 판단합니다.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을 좋은 것, 선한 것으로 스스로 판단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악인들의 특징은 스스로를 죄가 없다고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혹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을 시작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