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중고등부 공과 나눔은 공과책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미리 중고등부 공과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공과에 해당하는 본문이 너무 방대합니다.

(창 41:46~57; 45:1~15; 50:15~21로 나와 있지만

실제적으로 창세기 40장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40~41장을, 

다음 주일에는 45~50장을 나눈 이후에 공과책의 내용을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올려드리는 내용은
그 중 전반부의 내용인 창세기 40~41장의 내용입니다.
올려드리는 내용을 참고해 나눔을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1. 본문의 내용

이번 주 본문은 창세기 40~41장의 내용으로 13과의 전반부 내용입니다.

요셉 이야기에서 가장 주된 이슈는
바로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인 꿈입니다.
요셉 이야기에서 꿈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두 개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37장에서 요셉은 두 개의 꿈을 꾸었습니다.
두 꿈은 모두 한 가지 이야기, 형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41장에서 바로도 두 개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 두 개의 꿈 역시 한 가지 내용
곧 애굽에 찾아올 7년의 풍년과 그 풍년을 삼키고도 남을 7년의 흉년 이야기였습니다.

이 요셉과 바로의 두 개의 꿈, 한 가지 이야기 사이에도
두 개의 꿈 이야기(40장)가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두 개의 꿈 이야기는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입니다.

한 날에 술 관원과 떡 관원 두 사람이 꾼 꿈은
각각 술 관원의 복직과 구원, 떡 관원의 죽음을 뜻합니다.
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요셉이 하는 말,
그러니까 요셉을 둘러싼 모든 꿈 이야기의 한 가운데서 요셉이 하는 말은 간청이었습니다.
술 관원과 떡 관원의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바로에게 간청해
무죄한 자신을 풀어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고난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요셉 이야기는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그러나 술 관원은 그런 요셉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바로가 두 개의 꿈을 꾼 뒤에야 술 관원은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바로 앞에 서게 된 요셉은
그 옛날 술관원에게 했던 말 곧,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과 같은 다시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2년 전과 달리 요셉은 그 말 뒤에
“무죄한 나를 풀어주십시오.”라고 간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답할 뿐입니다.

이 대답 안에는 애굽의 신적인 존재인 바로 당신은
신이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이집트의 주인이 아니라,
이집트가 맞게 될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지만
해석을 알지 못하는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요셉은 바로를 하나님의 대답이 필요한 한 사람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구원을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이 이야기는
이집트의 주인이자, 온 세상의 주인은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게 해줍니다.
그들의 노예 생활에 대한 억울함과 무죄함의 호소를 들으시는 이는
이스라엘의 운명의 진짜 주인이 아닌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자신을 잡으러 온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그분의 심판의 주권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이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나아감으로
죄와 사망 아래에 있는 이들 역시
그 생명의 부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과정임을 증명하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고난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것이 그저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고난을 통해 흉년 속에서 애굽과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요셉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죽음의 주권을
바로가 아닌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현재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게 됩니다.

 

2. 말씀 나눔

이번 주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말씀을 들으신 뒤에 
몇 가지 질문들로 함께 나눔을 진행해 주세요.

<나눔 질문>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뭔가요?”

”내가 지난 적 있는 영혼의 어두운 밤, 하나님의 침묵하신 느낌이 들었던 경험이 있나요? 

그 때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을 정리할 수 있는 한 단어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 과거가 있나요? 그 때마다 어떻게 반응했나요?
이제는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이 나에게 주는 위로와 권면은 무엇인가요?”

“말씀을 들은 나에게 나는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요? 

또 오늘 말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요?”

나눔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진행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먼저는 말씀의 흐름을 정리할 수 있다면
부모님과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들은 말씀을 정리하고 나눔 질문을 나눕니다.
그게 조금 어렵다면 
가장 핵심되는 메시지를 하나씩 이야기하고 
그 주변 내용들을 나누며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것으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3. 결론

총리가 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그는 그 고난의 이유를 보디발의 아내가 아니라
수많은 생명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이 아니라 애굽 전역을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모함한 대제사장과 로마 군사들, 빌라도를 찾아가지 않고 
실패한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수를 부탁하거나, 그들을 저주하거나 최소한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그분의 승리 이야기에 동참하는 
새로운 삶을 주시기 위해 말입니다.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 삶은 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이 말씀을 통해 깨닫고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40장 너머에 있는 41장과 50장,
창세기를 넘어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 삶을 바라보는 은혜를 누리는
이 시간이길 기대합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은 바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성령 안에 있는 우리의 소망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