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주 본문 내용
이번 공과 13과는 2단원(언약의 하나님)의 일곱 번째 공과이자 마지막 공과입니다.
지난 주 말씀은 보디발의 감옥에 있다가 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였습니다.
총리가 된 요셉이 지은 아이의 이름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두 아이의 이름에 담긴 두 가지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과 고난 이야기입니다.
므낫세 이름 이야기에 나오는 고난은 ‘아말’이라는 단어로 힘든 노동을 뜻합니다.
이는 보디발의 집에서의 노역을 의미합니다.
에브라임 이름 이야기에서 나오는 고나는 ‘오니’이라는 단어로 비참함, 고통을 뜻합니다.
이는 그가 갇힌 감옥을 뜻할 것입니다.
그 두 단어 사이에 있는 것은 바로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입니다.
요셉이 만난 고통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아버지의 온 집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을 잊게 하시고,
그를 번성하게 하심으로
그의 아버지의 온 집 일의 괴로움에서 건져내시고 치료해 주셨다고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요셉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그의 꿈이 현실화된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가 잊어버렸던 그의 꿈과
그 꿈 때문에 일어난 아버지의 온 집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이 저지른 일과 똑같은 상황에 그 형들을 몰아넣습니다.
정탐꾼으로 몰아 결백함을 밝히기 위해 가족 이야기를 꺼내게 하고
그 가족 중 야곱이 애굽에 보내지 않은 그의 편애하는 자식 베냐민을 데려오게 한 것입니다.
그 베냐민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형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때의 형들의 모습이 곧 요셉을 판 후 20여 년의 그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형들은 그들이 한시도 요셉을 잊은 적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당한 곤경은 그 일에 대한 대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냐민을 놓아주지 않는 야곱에게 자기의 생명으로 베냐민을 지켜내겠다고 말한 유다로 인해
야곱은 처음으로 그의 편애하는 자식을 다른 형제들을 위해 내어줍니다.
그 야곱에게 했던 말과 같이 유다는 요셉의 시험 앞에서
정말 베냐민 대신 자신이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지난 번 아버지의 사랑을 전부라 여긴 형들의 구원과
라헬만이 자신의 전부라 여긴 야곱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위해 요셉에게 미리 꿈을 꾸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그 의도를 보게 됩니다.
요셉의 꿈은 요셉을 위한 꿈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집,
곧 야곱의 가족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버리는 악을 저지를 때,
하나님은 그 악을 다름아닌 그 형들을 구원하는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본 요셉의 이야기는 곧
형들을 구원하기 위한 요셉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악을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사건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 왕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최악의 사건을 구원의 사건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악이 완전히 패배하고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뜻은
이 끔찍한 악을 통해 가장 선한 이루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악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는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설교와 공과에서 강조할 내용>
공과에서는 창세기 50장까지 요셉의 전반적인 모든 이야기를 다룹니다.
요셉의 용서를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신실하심의 그림자라고 이야기하며
요셉이 베푼 은혜를 강조합니다.
설교에서는 요셉의 형들에게 초점을 둡니다.
요셉의 시험 앞에서 형들의 선택과 변화,
베냐민을 편애하는 야곱의 변화,
그 모두를 각자의 우상에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바로
요셉의 꿈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즉, 요셉의 꿈은 요셉을 위한 꿈이 아니라 요셉의 형들을 위한 꿈 곧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을 다름아닌 형들이 요셉을 팔아버리는 순간부터 실행하셨고 결국 이루셨습니다.
여기서 야곱과 달리 자기 아들 모두를 사랑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악을 변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우리가 믿는 복음에 담겨 있습니다.
요셉 이야기가 보여주는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의 소망에 대해 설교에서 강조할 것입니다.
2. 공과 준비 및 진행하기
1) 미리 공과 내용 숙지하기(87-92페이지)
먼저 공과 전체 내용을 숙지해 주세요.
특별히 87페이지에는 공과 전체 내용과 방향성이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숙지하시며 공과 내용에 대한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질문들을 정리해 주세요.
정말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 일을 통해 이루어진 좋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해할 수 없던 시간들을 통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게 된 일들에 대해 나눠주세요.
2) 아이스 브레이크 진행하기
예배 이후 자연스럽게 설교 내용 나눔을 진행해 주세요.
“말씀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들었던 생각이 있니?”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무엇이니? 왜 그 내용이 남았어?”
“말씀을 들을 때 떠오른 사람이나 사건, 또 지난 한 주간의 일들은 뭐가 있었어?”
“오늘 말씀과 관련해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
3) 공과 진행하기(88~90페이지)
공과를 진행하기 전에 오늘 말씀 내용을 한 번 물어봐주세요.
한줄 요약,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단어 등으로 진행해 주셔도 좋습니다.
부모님도 어떤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았는지 아이들과 함께 나눠주세요.
또 공과에서는 설교에서 다루지 않은 더 깊은 이야기가 있음을 이야기해주시며
함께 공과로 들어가주세요.
함께 공과를 읽어가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에 대해 숙지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아이들과 함께 공과를 읽어가주세요.
혹 어려운 단어가 나온다면 아이들에게 무슨 뜻일지 질문해 주시고
덧붙여 설명해 주세요.
4) 삶 나누기(91페이지)
이 부분에서 부모님의 삶을 깊이 나눠주시되
주로 아이들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시며 말씀해주세요.
첫 번째 질문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해주세요.
요셉에게 형들이 있었다면 나에겐 누가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봐주시고
부모님도 그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두 번째 질문은 너무 추궁하고 답정너적인 질문인 듯싶습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수정해 주세요.
특별히 위러브의 ‘공감하시네’라는 곡을 함께 들으며
느낌과 생각을 나눠주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가장 큰 일은 바로 ‘공감’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질문은 용서가 힘든 이유를 묻는 질문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게 뭔지 물어봐 주세요.
그러나 요셉이 용서했으니 너도 용서해라로 나아가시면 안 됩니다.
요셉은 형들의 회개와 변화 여부를 확인한 뒤에야 화해했습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가족과의 화해는
그 가족의 폭력이 멈춘 뒤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점들을 염두할 때 아이들에게
용서란 나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이 회개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알려주세요.
그 마음으로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며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지 나눠주세요.
마지막 네 번째 질문은 종합적이고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되겠습니다.
5) 심화 묵상(92페이지)
주중에 시간을 정해 제시되어 있는 읽을 거리들과 나눔 질문들을 나눠주셔도 좋지만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주일에 함께 진행해 주셔도 좋을 듯싶습니다.
이번 주 묵상 질문도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다만 Heart의 첫 번째 질문은 너무 정죄하는 방향으로 나갈 위험이 있어 보입니다.
당연히 원한과 용서의 복음은 모순됩니다.
그러나 내가 용서했으니 너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은
자칫 상처입은 자를 치료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눠주세요.
“용서할 수 없는 우리에게 복음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줍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주님은 우리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에 대해 함께 나눠주세요.
Hands의 질문 역시 다그치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 수 있냐, 원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
“어떻게 동참할 수 있을까?”로 바꿔주시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이렇게 나눔을 진행해주세요.
3. 결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능력에서
우리는 어떤 악에도 소망을 잃지 말라는
복음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먼저 그 위로를 누리고 또 그 위로를 나눕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