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주 본문 내용

<공지사항>

지난 주에 공지한 것처럼
오늘은 지난 주(출 1~2장)에 이어 1과(1~4장)의 나머지 부분(3~4장)을 다룹니다.
지난 주에는 공과책을 펴지 않고 나눔을 진행했지만
오늘은 지난주 내용을 복습하며 오늘 말씀의 내용까지 함께
공과를 통해 나눔을 진행하시면 되겠습니다.
복습은 공과책을 읽어가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정리해주시면 되겠습니다.

1) 본문 내용

이번 주 본문의 내용은 출애굽기 3~4장입니다.
1~2장에서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죽인 모세는
히브리인에게 고발을 당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게 됩니다.
3~4장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본 바로 그 장면과 같이
고통으로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찾아와 그들을 보내시는 장면은
성경 여기저기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길지는 않습니다.
모세의 부르심이 가장 긴 이유는 그가 끊임없이 거부하고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거기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거기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사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여러 다양한 해석 중 하나입니다.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신 대답은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나는 ‘나는 존재한다/나는 있다’이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있다 혹은 존재(영어로 말하면 be동사)인 것입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해석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는 있다’라는 말은 처음과 나중이신 분, 지금도 존재하고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 안에서 크게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 한글 성경에 나온 것처럼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해석입니다.
‘나는 있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절대적이고 완전하시며 스스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나는 나다’라는 해석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분,
즉 하나님 같은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있을 곳에 있을 것이다.’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이는 그분의 주권을 표현한 해석입니다.

이 세 해석 중 어느 한 해석만 맞는 게 아닙니다.
이 모두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 ‘에흐예 아쉐를 에흐예’라는 하나님의 자기 소개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 초월적인 하나님의 이름 뒤에는 하나의 이름이 더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초월적이고 무한하시며 유일하신 주권자 절대자 하나님이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것이라 부르십니다.
그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해 시간과 공간을 뚫고 들어와
애굽의 노예들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설득하시고 그와 함께 애굽을 향하십니다.

에흐예이신 하나님은 모세도 아는 이스라엘의 거부를 끌어안고
그들을 구원하러 그 높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놀라운 이름으로 베푸시는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입니다.

<설교와 공과에서 강조할 내용>

공과에서는 전반적인 성경의 흐름과
쫓겨난 모세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목자였던 모세, 목자였던 다윗과
목자로 오신 예수님과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세가 양을 돌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의 양들인 우리를 돌보시고 목숨까지 내어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평하게 하셨음을 이야기합니다.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이름과 그 이름을 가진 하나님의 선택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를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수난 예언과 연결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드러난 그 때서야 비로소 예수님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에흐예이신 하나님이 모세가 만류한 이유, 이스라엘의 거부를 아셨으면서도
그 거부를 끌어안고 그 거부자들을 구원하러 높고 높은 그곳에서 내려오십니다.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은
그분 앞에서 모래알 만한 사람이 되어
오시기 전부터 그가 아셨던 자리인 십자가로 뚜벅뚜벅 걸어가십니다.

그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먼지 같은 이들에게 자기 이름을 주시는 분,
그가 우리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우리의 가장 큰 영광이라는 사실을
이번 설교의 핵심입니다.

 

2. 공과 준비하기

1) 미리 공과 내용 숙지하기(13~18페이지)

먼저 공과 전체 내용을 숙지해 주세요.
특별히 13페이지에는 공과 전체 내용과 방향성이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숙지하시며 공과 내용에 대한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질문들을 정리해 주세요.
주로 부모님이 누군가를 위해 얼마만큼 망가져 보셨는지,
또 부모님이 받아본 가장 희생적인 사랑은 어떤 사건이 있는지 준비해주세요
(주로 가족 이야기가 떠오르시겠지만
되도록이면 그리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선배나 동생,
또 친한 친구들의 헌신 등에 대해 이야기를 준비해주세요.
또 핑계 이야기를 떠올려주세요.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던
부모님 자신과 주변의 핑계 이야기들을 준비해주세요.)
또 설교를 들으시며 들었던 묵상들이 있으시다면
체크해 주시며 대화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2) 아이스 브레이크 진행하기

예배 이후 자연스럽게 설교 내용 나눔을 진행해 주세요.
“말씀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들었던 생각이 있니?”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무엇이니? 왜 그 내용이 남았어?”
“말씀을 들을 때 떠오른 사람이나 사건, 또 지난 한 주간의 일들은 뭐가 있었어?”
“오늘 말씀과 관련해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


3) 공과 진행하기(14~16페이지)

이후 14~16페이지 공과 속 본문 읽기와 문제 풀기를 하나하나 진행해 주세요.
공과 내용이 길지 않아서 그저 읽어가시는 것만으로도
내용 정리 및 공과 진행이 수월하실 것입니다.

읽어가시며 앞서 준비한 질문들을 적재적소에서 던져주시면 되겠습니다.


4) 삶 나누기(17페이지)

이 부분에서 부모님의 삶을 깊이 나눠주세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씀이 주는 위로(첫 번째 질문),
이스라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약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에 대한 나의 관심(두 번째 질문),
모세에게 공감하는 나를 향한 본문의 묵상(세 번째 질문),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의 관계에 대한 묵상(네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나눠주세요.

마지막 질문은 많이 추상적이고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냥 “도움이 될까요?”가 아니라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로 바꿔주세요.


5) 심화 묵상(18페이지)

한주간 묵상 거리들이 종합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주중에 시간을 정해 가정에서 제시되어 있는 읽을거리들과 나눔 질문들을 나눠주세요.
하루에 한 파트씩(Head, Heart, Hands) 아이들과 나눔을 진행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러한 질문들로 아이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또 신앙을 기반한 대화들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세요.

또 각 파트에 실린 설명을 읽고 질문지를 진행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나눔이 될 것입니다.

 

3. 결론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의미가 담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그 여호와라는 이름을 수식하는 단어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의 언약을 성취하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메시야 예수님,
이를 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하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히신’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소개하며
그 이름이 우리의 것이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기를 선택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는 그분의 것으로 사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 은혜를 맛보아 알아가는 이 시간이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