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남녀의 연합과 결혼을 단순한 질서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유비 하는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며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층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단순한 번식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명령이자 축복인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을 통한 남녀의 연합과 선한 사랑의 결실로서 열매 맺어지는 생명이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열매 맺게 되는 생명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자 복입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 사람들의 번성은 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복을 변색시킨 불순종의 최종적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정의 질서와 사랑 속에서의 번성이 아닌, 탐욕과 쾌락의 결과물로서의 번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번성이 아니라 차라리 죄악으로 가득 찬 번식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모든 것을 취하듯,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때 아내라는 히브리어 단어 “잇샤”는 여자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즉 아내라는 표현은 점잖게 순화된 번역입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혼으로 맺어져 평생을 함께할 아내로 삼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울타리와는 상관없이 모든 ‘여자’와의 자유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번성했다는 성경의 표현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들로 세상이 가득 차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당시 세상의 문화였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고리타분한 관습의 유물로 여기는 문화가 팽배한 사회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짐승에겐 짝짓기 철이 있는데, 이들에겐 짝짓기 철이랄 것도 없으니 그들은 분명 발정 난 짐승보다 못한 한낱 ‘고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던 동산 중앙의 열매를 따 먹었던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에서 드러나는 죄의 본성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본질상 그 성질이 동일합니다.
결국 모든 죄는 본질상 동일한 심리와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은 내 눈의 보기에 좋은 것을 얻어야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며,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도덕과 관습과 율법이 아닌,
스스로 개척하고 주도하는 나름의 가치관과 규칙으로 사는 것입니다.
룰을 내가 정하는 것.
가히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신과 다르지 않게 인지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신들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합니다(창6:2).
히브리어 단어 ‘엘로힘’을 이 문맥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것은 별로 적절한 번역이 아닙니다.
‘엘로힘’이 구약에서 200번 이상 우상과 이방 신들에게 사용되고 있듯,
네피림을 낳은 존재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닌 ‘신들의 아들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합니다.
이러한 ‘신들의 아들들’이 행한 범죄는 단순한 성적 타락으로 인한 범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사랑과 연합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태를 향한 하나님의 솔루션은 심판이었습니다.
타락한 모든 자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들,
아무리 바라보아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과 생명과 영광과 은혜와 교회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신들의 아들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이 세상을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로 물들이며 죄악을 잉태하려 하고 있지만,
이런 죄악 된 세상의 풍조를 향해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으로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은 그의 백성들에겐 신원의 날, 기쁨의 날, 위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신원의 날을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