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주 본문 내용
이번 주 공과는 11과, 속죄제와 속건제로 성경 범위로는 레위기 4~5장, 16장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을 꼽으라면 누구나 모세 오경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다른 책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책들이 모세 오경 위에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세 오경의 정중앙에 있는 성경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적어도 그 위치로 볼 때 구약의 심장이자 척추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 레위기의 정중앙에 위치한 내용은 레위기 16장, 대속죄일입니다.
그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제사가 바로 속죄제이며, 그 속죄제와 같은 그룹에 속한 제사가 속건제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가 번제, 소제, 화목제와 다른 것은 바로 의무적인 제사라는 점입니다.
더불어 죄를 처리하는 제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는 죄인이 아니기를 선택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과
스스로 그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속건제는 배상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배상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속건제는 죄를 빚으로 표현합니다.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성물을 훔치는 것,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했을 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먼저 이웃이 입은 손해에 5분의 1을 더해 갚아야 했고, 성소 제물로 수송아지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처럼 속건제는 이웃에게 지은 죄는 곧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알려줍니다.
십계명 후반부 내용이 여기서도 다시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정결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정결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속죄제는 죄를 더러움, 오염으로 표현합니다.
처음부터 속죄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죄의 정의를 새롭게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핵심 메시지, “너는 죄인이야.”라는 이야기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죄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우리가 죄의 기준을 정하는 그 일이 우리의 가장 첫 번째 죄임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첫 사람이 지은 죄가 바로 자기가 선과 악의 기준이 되어 하나님을 내 마음, 내 세상에서 몰아내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속죄제는 알지 못하는 중에, 내가 의도하지 않은 죄를 지었을 때도 내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죄의 기준은 여호와의 계명 중에 하나라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불완전한 자들임을 속죄제는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불완전성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정한 것에 접촉하거나 유출병, 부부간의 성관계 등으로 피나 정액을 흘렸을 때에도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럽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적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피와 정액은 생명의 액체이기에 그것을 유출하는 것은 곧 생명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없는 상태로 여겨진 것입니다.
속죄제는 그런 우리의 불완전함을 폭로하고 거기서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해 냅니다.
또 한 가지, 속죄제의 특징은 사람마다 드려야 할 속죄제물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가장 처음 속죄제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이는 다름 아닌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속죄제물은 수송아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모든 회중을 위한 속죄제물과 똑같았습니다.
대제사장의 죄의 무게는 모든 회중의 죄의 무게와 동일한 것입니다.
더불어 그의 죄는 백성에게 허물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속죄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더러움에서 가장 멀 것 같은 대제사장이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대제사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으며 드려진 번제와 화목제물의 피를 받아
절반은 제단에, 절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출 24: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는 성막과 이스라엘이 이 피를 통해 연결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는 곧 성막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속죄제물의 피는 성소와 성막 기구들에 뿌려지고 발라졌습니다.
이는 곧 내 죄는 성막에 영향을 주며 성막의 오염은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엔 일 년에 한 번 이스라엘 전체가 깨끗함을 받는 대속죄일이 있었습니다.
이 날 이스라엘 모든 이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
더불어 대제사장이 제비 뽑힌 한 염소에게 안수해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를 그 염소에게 짊어지게 하고,
한 사람은 그 염소를 끌고 광야로 가서 그 염소를 풀어놓았습니다.
이는 죄를 그 원천인 사탄의 장소에 가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무리 속죄제를 잘 드렸다 할지라도 이 대속죄일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곧 나의 죄이기에 그날 나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결국 그와 연결된 나를 위해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나 자신과 같이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이스라엘과 우리의 일로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만 남겨두지 않으시고 자기 아들을 속죄제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날 밤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막과 이스라엘이 번제와 화목제물의 언약의 피로 하나가 된 것처럼
예수님은 그의 피로 그와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속죄제물의 피는 성막을 깨끗하게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아사셀 염소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진영 밖 광야에서 죽은 것처럼
예수님은 예루살렘 밖 해골의 곳이라 불리는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속죄제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헤아릴 수 없는 죄의 무게와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지막지한 사랑의 무게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나와 같은 이들이 예수님의 피로 하나가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피로 하나가 된 교회이기에 서로를 내 몸과 같이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받는 자들이며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주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들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이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 공동체로 누리는 기쁨과 베푸는 사랑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설교와 공과에서 강조할 내용>
공과에서는 속죄제물에게 죄를 전가하는 내용을 강조합니다.
속건제를 통해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는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를 통해 흠 없는 어린양이 보여주는 진정한 속죄제물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합니다.
설교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내용들로
속건제와 속죄제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하고
그것이 보여주는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해 나누려 합니다.
2. 공과 준비하기
1) 미리 공과 내용 숙지하기(75~78페이지)
먼저 공과 전체 내용을 숙지해 주세요.
특별히 75페이지에는 공과 전체 내용과 방향성이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공과 성격상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내용들은 앞서 정리한 내용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스 브레이크를 위해 이런 질문들을 준비해 주세요.
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람 혹은 물건은 무엇인지,
그것을 현금 가치로 얼마라며 가치를 책정한다면 기분이 어떨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누가 다쳤을 때 내가 다친 것처럼 아팠던 경험이 있는지 등등에 대해 나누는 것으로
공과를 시작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또 설교를 들으시며 들었던 묵상들이 있으시다면
체크해 주시며 대화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2) 아이스 브레이크 진행하기
앞서 준비하신 질문들과 더불어 이런 질문들로 설교 내용을 나눠주세요.
“말씀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나 들었던 생각이 있니?”
“오늘 말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은 무엇이니? 왜 그 내용이 남았어?”
“말씀을 들을 때 떠오른 사람이나 사건, 또 지난 한 주간의 일들은 뭐가 있었어?”
“오늘 말씀과 관련해 어떤 기도를 할 수 있을까?”
3) 공과 진행하기(76~78페이지)
이후 76~78페이지를 여러 방법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번갈아가며 읽기, 함께 읽기 등등)
또 공과 속 본문 읽기와 문제 풀기를 하나하나 진행해 주세요.
76페이지는 직접 언제 죄인인 것을 깨달았는지, 또 죄를 숨긴 경험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아직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아 나눌 수 없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먼저 솔직하게 오픈해 주세요.
어렸을 때 있었던 경험들, 또 죄를 숨기는 일과 죄책감의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77페이지는 속건제 규례가 나옵니다. 함께 읽어주시고 질문을 풀어주세요.
첫 번째 질문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을 아이들이 이야기해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느낌만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질문해 주세요.
두 번째 질문은 그러한 일을 친구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로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나눔을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예수님으로의 연결을 통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주님이 경험하셨다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아시며 그가 아시는 우리의 삶을 함께 하시며 인도하신다고 이야기해주세요.
4) 삶 나누기(79페이지)
첫 번째 질문은 죄의 고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백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아이들에게 질문해 주세요.
그리고 고백이 줄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아이들과 함께 나눠주세요.
죄의 고백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외면하고 있던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죄가 보지 못하게 하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를 고백해야 하는 이유라고,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오픈하기를 멈추지 말자고 이야기해주세요.
두 번째 질문은 속죄제의 정결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막 이야기를 다시 나눠주셔야겠죠.
죄를 씻는 것은 피를 뿌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피를 뿌리는 것은 더러운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 성막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는 성막을 세탁하고 성막 기구들을 걸레질하며 닦는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나눠주세요.
우리가 우리의 겉을 닦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속은 여전히 더러울 수 있다고 말씀해 주세요.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는 세상에 살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세요.
세 번째 질문에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더 많이 들어주세요.
또 사람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선행, 고행, 칩거 등은
그 사람들의 죄를 해결할 수 없고 그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세요.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이 담당하시는 방법 외에는 우리에게 구원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를 위해 대신 그 모든 짐을 지신 주님이 우리의 구원이시라는 의미를
이렇게 함께 나눠주세요.
네 번째 질문에 나오는 사명 이야기는 아직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먼저 아이들에게 내 속마음을 숨기고 그와 다른 삶을 살면 기분이 어떨지 질문해 주세요.
그것은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것이 들통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우리를 몰고 갑니다.
그래서 더 과도하게 내 겉모습, 내 이미지를 치장하게 만들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을 더 깊은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 열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 질문들을 마무리해주세요.
5) 심화 묵상(80페이지)
한주간 묵상 거리들이 종합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주중에 시간을 정해 가정에서 제시되어 있는 읽을거리들과 나눔 질문들을 나눠주세요.
하루에 한 파트씩(Head, Heart, Hands) 아이들과 나눔을 진행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번 주 심화 묵상 질문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유익한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행동 파트만 조금 수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증거,
한 주간 내가 한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이 드러났다 자신할 수 있는 근거들에 대해 묻는 이런 질문들은
그저 아이들을 정죄하거나 교만하게만 만듭니다.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또 자신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히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증거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의지하며 그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걸 잘했다고 자신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질문을 좀 바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을 기억하기 위해 내가 구해야 할 기도는 무엇인가요?”
“한 주 동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3. 결론
우리를 위해 주님이 주신 것은 그의 아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 아들의 피로 우리는 그와 함께 되었고
그가 나처럼 생명을 내어주신 이들과 한 공동체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일 수 없으며, 사랑받고 사랑하며 죄를 몰아내고
혼자서는 견뎌낼 수 없는 우리 삶의 현실을 함께 감당하며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주의 피로 이루어진 이 기적이 우리의 삶임을 알게 되길 소망합니다.
함께여서 행복한 우리의 이름은 교회입니다.
사랑합니다.